산골통신

농사일의 댓가 또는~

산골통신 2024. 3. 15. 13:46

요즘 연일 날씨가 좋아서 하루 해 뜨면 나가고 해지면 들어오는 일과 반복이다.
농사일이 시작되었다. 진작에~

밭에 작년 농사일의 잔재 흔적들인 검부지기들을 갈퀴로 긁어 치우고 거름를 고루 뿌려놨다.

올해는 큰 밭들을 모조리 묵히고 자잘한 밭 딱 3군데만 남겨놨다.
사람이 말이야 다 살자고 하는거 아녀?!
저거 큰 밭들 다 농사짓자 덤비다가 내 먼저 죽겠네~
몇년 전부터 하나씩 둘씩 묵히다가 올봄엔 눈 딱 감았다!

어느날 정형외과엘 찾아갔다.
손가락 발가락 모양이 울퉁불퉁해졌어요!
왼쪽 어깨가 요상하게 아파요!
손발이 저리고 시려요~
무릎이 가끔가다 시큰거려요…
일 많이 한 날은 허리하고 등도 아프고요.

의사샘이 한숨을 푹푹 쉬시더니만~ 엑스레이 잔뜩 찍어보고는 하시는 말씀!
”농사일 하지 마세요!!!“

손가락 발가락은 퇴행성관절염이고요~
어깨는 석회 어쩌고 염증이고요~
무릎 허리 등은 4번5번 척추 관절 어쩌고 좁아지고 닳아서 그렇고요~
계속 이대로 일하시다간 밤에 잠도 못 주무실 정도로 아플겁니다!

정형외과 병원 대기실에 앉아 대기하면서 진료받으러 온 환자들 모습을 유심히 살펴봤다.
다들 같은 증상들~ 거기서 거기인 증상들을 진료받고 치료받고 약타러 온 노인분들이 태반이다.
간혹 다쳐서 온 분들 빼고…

어젯밤 밤새 뒤척이며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
총체적 난국이구나…
다들 이러고 산단다~ 아프면 병원가고 좀 우선하면 놀고 일하고… 너만 그러는건 아니란다.

이 모두 농사일하며 산골에서 사는 세금이라 그리 생각해야겠다… 때로 세금이 가혹하지마는…

이 산골마을에 산녀 서열이 끝에서 두번째다.
열댓가구 뿐인 이 산골에 어르신들이 그득이다.
최고 어르신들은 전동차를 타고 댕기신다.
그 아래 아지매들은 전동차 장만하는 걸 소원한다.
남정네들은 오토바이나 트럭을 주로 타고 다닌다. 걸어서 다니는 사람은 산녀밖에 없다!
걸어다니라고 말을 하면 힘들단다!
다들 뭔가를 타고 댕긴다!

그러면서 운동해야한다고 쩌어기 아래 냇가 둑방길을 일삼아 걷는다…
작년 폭우 피해로 냇가 둑이 여기저기 유실되어 그거 복구하는 김에 산책길 겸용 둑방길 조성을 해준단다.

사흘에 걸쳐 밭 세군데에 거름을 뿌렸다.
예전같으면 하루치 한나절 일거리였다.
하지만 작년부터 병원행이 잦아지면서 생각을 바꿨다. 하루에 밭 하나씩~ 시간 남는다고 일 더 할 수 있다고 더 하지 말자고 맘 묵었다!

남은 시간에 봉덕이랑 마당냥이들과 놀고 꽃밭에 꽃모종들을 옮겨 심었다.
최재천박사님이 추천해준 책들 구해 읽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인문학강좌 등등을 찾아 보기도 하고 그러고 지낸다.

겨우내 아무것도 없는듯 비었던 곳에서 쑥쑥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주변 정리도 해주고 빈 곳에 뭐든 심고 가꾸니 황량했던 마당이 조금은 이뻐보이더라…

오늘은 타래붓꽃 모종들을 대거 옮겨심었다. 얘들은 번식력이 좋고 자리 딱 차지하고 풀들도 이겨묵으니까 마당 가장자리며 밭가는 길 가장자리 등등에 심으면 경계가 지어지고 좋더라.

이 밭에 뭘 심을지 아직도 결정을 못했다.
결정장애다!!!

쌀방아찧으면 나오는 등겨 당가루를 뿌리고 달구똥거름을 흩뿌렸다.
나무꾼이 언제나 갈아주려나…
산녀가 삽질하긴 이젠 싫은데~

아랫채 지붕 위에 장끼 한 마리~
봉덕이가 난리난리 개난리를 치며 들락날락 짖어대길래 뭔고 하고 보니 숫꿩 한 마리 지붕 위에~ 척하니 앉아있어!
한동안 쉬었다 푸드덕 날라갔다~
뒷산 가는 길에 몇 마리 사는거 알긴 한데 이리 사람집 가까이 온 적은 없었는데…

들냥이들이 텃밭 비닐하우스 안에서 겨울을 나고 겨나왔다.
이놈들이 이제 산녀를 경계는 하면서도 눈칫껏 다닌다.
방티연못 물이 그리 맛있냐? 꼭 저 물을 마시대…

삼숙이 새끼들 중 까만 고양이가 둘이 있는데 한놈이 솥뚜껑삼겹살 해묵는 아궁이 속에 척 들어가 있더라…
한짝에 있던걸 이짝으로 옮겨 쌓았는데 그 첫 개시를 이놈이 하는구만!!!

이번주에 막둥이가 친구들하고 놀러온다고 해서 마당 정비를 하고 있는 참이다.
솥뚜껑삼겹살을 해먹어본 적이 없단다…
불멍도 하고 싶단다~
그래서 아궁이 군불때서 아랫채 황토방에서 자라고 했다.
천상 도시에서만 나고 자란 친구들이라 촌캉스가 로망이란다…
우리 아이들이야 애기적부터 불때고 살아서리 그런 로망이 없는데…
무심히 친구들간 대화 중 산골 이야기가 나오면 그리 놀러오고 싶어한단다…
그래서 조건을 달았다!
니들이 다 알아서 해라!!! 라고…
산녀가 준비해줄건 묵은지랑 깻잎장아찌랑 달래겉절이랑 된장 뿐이다!
나머진 니들이 조달하고 니들이 알아서 해묵어라~
그랬더니 조옿단다!!!
일 도와줄거 없느냐 묻길래~ 그럼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화분들 수십여 개 모조리 꺼내 옮겨달라 했다.
서로 부담되지 않고 상부상조하는거지 뭐~

한낮엔 초여름같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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