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봄비처럼 비가 내렸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런 어리둥절한 날씨…
어제는 하루종일 아궁이 앞에서 노닥거렸다.
정짓간 문밖 비 오는 걸 내다보며 비멍도 하고 불멍도 하고~
며칠 후 또 비가 온 뒤 급추위가 온단다.
일기예보가 그러하니 그럴 것이다.
요즘은 대충 잘 맞더라고…
그러면 내일까지밖에는 바깥 일을 못 할겨…
주섬주섬 일어나 무슨 일을 할지 한 바퀴 돌았다.
그동안 농사일 끝나고 겨울 한가할 때 하지 뭐~ 이러면서 미뤄둔 숙제들이 꽤 있거든!
오늘 돌아댕기다 눈에 띈 장독대…
덮개가 다 낡고 삭아 너덜거린다.
우리집 장독대가 이 지경이면 엄니집 장독대는 어찌되었을라나…
걱정이 되어 서둘러 가보니 아이구야…
여기는 더하구만…
뚜껑을 열어보니 고추장도 된장도 바싹 말라붙어있네…
돌아가신 엄니 장독대인데 몇달 손을 안 댔더니 이렇구만…
근 10여 년 묵은 간장 된장 고추장들이다.
산녀 아니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월이 그리 만들었다.
광목천이랑 비닐을 가져다 새로 덮개를 만들어 씌우고 꼭 묶어놨다.
그리고 장독대 바닥에 낙엽이 쌓여무져진 것도 삽으로 긁어내고 쓸고 치웠다.
물청소까지 했으면 좋겠는데 비가 또 온다니 그때 하던가…
사람이 가고 집이 비고…
사람 손길이 사라진 이 낡고 오래된 공간 이 물건들에는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아 그저 허허롭다…
주인 잃은지 오랜 이 집에 누가 오려나…
다만 산녀만이 오며가며 늦은 손길이라도 보탠다.

아침 아궁이에 장작 댓개 처넣어 땠다.
솔갈비가 있으니 불붙이는 건 일도 아니네…
원없이 집어땐다.
아궁이 고래 깊숙히 부지깽이로 밀어넣고 일어서
굴뚝으로 연기 잘 나가나 살피고 돌아선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런 애매모호한 날씨다.
땅이 젖었으니 나무를 하러 갈 수도 없고 밭일도 일없다.
봉덕이도 하루종일 안 나가고 들앉아있다.
마당냥이들은 봉덕이가 다 내쫓아서 어쩌다 배고프면 눈치껏 들어왔다 나간다.
들냥이 여섯마리는 산녀 기척만 나면 쫓아다니는데 외면하기가 참 어렵다.
어느놈이 싸놓았는지 옥수수 알갱이가 소화도 안된채로 그대로 똥에 섞여있더라.
아이구 그리 먹을게 없었더나…
니네 저기 소 축사에 가서 소사료 훔쳐먹었냐? 아니면 옥수수자루 뜯어먹었냐?
아주 옥수수똥을 싸놓았네!
그래도 안된다.
내가 니들까지는 멕일 수 있어도 내년 봄 니들 새끼들까지는 못 돌본다고!!!
어여 저기 가서 사냥해묵어!
어쩌다 주는 건 몰라도 아주 대놓고 터잡고 살려하니 이게 참 문제야!!!
니 할머니 니 엄니가 그랬다고 니들까지 그러면 되냐 안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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