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일복이 산녀를 무쟈게 좋아라 하나보다.
어제그제그끄저께는 엄청나게 분주하고 바쁘고 힘들고 뭐 그랬다.
사실 김장 날자를 잡지못해 우왕좌왕 하던 중
도시장정이 18일께에 시간이 난다해서 두집만 김장을 하기로 했다.
올해는 식구가 줄었으니 서른포기만 한다고…
그럼 우리도 서른포기만 하자요!
해서 육십포기 배추를 뽑아 절이기로 했는디…
이 장정 좀 보소!!!
세상에나 80포기를 절여놓은겨!!!
산녀가 한눈 파는 새에 속이 덜찬 배추는 숫자에 넣지도 않고 이건 작으니까~ 뭐 이럼서 막 절인겨…
이거 어쩔겨~ 그대가 다 가져갈겨?
안 가져간대… 그럼 어쩔겨~
우린 김치냉장고 하나가 고장나서 넣을데도 없으야~ 책임져라~
모른대~
이 대책없는 도시장정을 보았나 그래…
뭐 하여튼 나무꾼은 일이 바빠 밤에나 온다하고 도시장정이 밭에서 배추를 다 뽑아 절일건 절이고 저장할 건 저장하고 등등 일을 같이 해줬다.
그 와중에 새끼뱀 한 마리 밟아 죽이고…
안 죽이려 했는디… 올해는 작심했는디…
하필 뒤안 문 앞 귀퉁이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으니 우짜란 말여…
밟아죽이고 나서도 괜시리 맘이 언짢아…
오늘까지도 여엉 그 옆을 지나가면 맘이 안 좋다…
산골살이 매일매일이 살생유택인데 까이꺼 새끼뱀 한 마리야 뭐 새삼스럽게시리…
뭐 어쨌든 고래통 하나그득 배추 소금쳐서 절여놓고 한데 아궁이 솥에 돼지앞다리살 수육 세근 삶아 동동주 세병 소주 한 병 깠다.
도시장정이 아이들 학교 졸업시킨 후 내후년에 산골로 귀농하겠다고 긴급 선포!!!
집도 땅도 있으니 몸만 오면 되걸랑…
산녀는 애들보고 니들 알아서 졸업하라혀~ 내년봄부터 농사 시작합세!
김장양념 준비~
절인배추 45포기 무 25개
마늘 한양푼 생강 냉면그릇하나
양파 한 소쿠리 대파 한 아름
사과 배 각 열댓개
매실액기스 멸치액젖 새우젖
고춧가루 열근
찹쌀죽 두솥
대충대강 대형 분쇄기에 처넣어 몽땅 갈아버렸다!
이걸 다 채썬다고 생각해봐라~
산녀 손모가지 작살나고 허리 분질러진다!!!
못햐!!!
대형 분쇄기는 몇년전에 작심하고 산건데 이리 클 줄은 모르고… 하여튼 성능이 좋아 자알 쓰고 있다.
모조리 갈아서 큰 통에 들이부어 간을 맞춘다.
하룻밤 재워서 살짝 숙성시키면 좋다.
다음날 배추 씻어 건져 도시장정은 이것저것 트렁크 채워서 잘가라 보내고!
산녀 일 시작!!!
밤새 나무꾼이 아팠다.
며칠전부터 독감증세가 있어서 아팠단다…
그러니 일을 시킬 수가 있어야지…
양념 분쇄기에 갈아서 옮기고 절인배추랑 들통들이랑 등등 무거운 것들만 좀 같이 들어서 옮겨주게 하고 들어가 쉬라고 했다.
양념준비는 다 되었는데 일할 사람이 딱 산녀 혼자 뿐일세…
그렇다고 두손 놓고 앉아있을 수가 있나…
누구는 아들딸며느리 부르면 되지않나 하겠지만 올해만치 김장일정 잡기가 힘든 해도 없었고 또 아이들 무쟈게 바쁘다!
그리고 그 아이들 김치 잘 안 먹는다! 산골집에 와야 좀 먹지! 도시에선 잘 안 먹게 된단다.
나무꾼이랑 둘이 오붓하게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그만 그 나무꾼이 자리보전하고 드러누우셨네…
그래서 그날은 두손 놨다.
연이틀 일을 했더니 몸이 마구 아우성을 친다.
어차피 양념준비도 다 되었고 절인배추도 집안에 들어와있으니 걱정없다!
부엌을 시원하게 유지되도록 문을 좀 열어놓고 그냥 뻗어버렸다.
그러니까 그다음날 어제…
나무꾼은 밤새 앓고 아침일찍 일터로 부랴부랴 떠났다…
해외일정으로 아래 직원들이 다 출장을 가는 바람에 사무실에 나무꾼이 없으면 안되는 그런 상황…
나무꾼도 같이 갔어야 했는데 건강도 안 좋고 또 그 미친나라에서 비자도 안 주는?! 뭐 개떡같은 상황도 있고 등등…
뭐 하여튼~
저 몸으로 3주간 전국순회 일정은 무리다!!!
어제 아침 산녀는 병원일정도 있어서 병원순례 한바탕 하고 약봉지 두둑히 받아챙기고
김장 버무리기는 오후에나 시작할 수 있었다.
근데 그 와중에 다른 도시장정 하나가 다녀간다고 연락…
하이고 미리 좀 연락주지…
부랴부랴 산골로 돌아와보니 아직 안 옴…
으이그…
에라 몰겄다. 내는 김장이나 하자!
배추에 양념 처발처발 자알 한 다음 바로바로 김치냉장고로 직행~
다 못들어가는 건 통에 담아 그냥 냉장고로 직행~
저녁늦게까지 혼자서 중얼중얼거리며 흥얼흥얼거리며 해치웠다.
그 와중에 다른 도시장정내외가 잠깐 다녀가며 이야기 나누고 알아서 이것저것 챙겨갔다.
해가 다 진 저녁에사 일은 끝났는데…
저 뒷설거지는 다 우짜냐…
벌건 고춧가루양념 범벅이 된 큰 통 두 개에 김장매트 두 개에 등등…
아이고 몰겄다!!! 내일하자~
이젠 몰라… 저거 내일 치운다고 뭐라 할 사람 없고 나라 안 망한다!
미처 못 챙긴 닭집이 생각나 부랴부랴 가서 챙겨주고 오는데 봉덕이가 유난히 들까불며 엉겨붙네?!
쟈가 왜 저랴? 하고 들여다보니 하이고~
우리 봉덕이 오늘 밥 굶었다!!!
아이고 세상에 내가 이리 정신이 없었구나…
미안타!
새로 사온 맛난 밥 한그릇 부어주니 이놈보게~
그전엔 체면차린다고 산녀가 주고 사라진 다음에야 밥을 먹는데 이번엔 무쟈게 배가 고팠는지 바로 우걱우걱 씹어먹네!!!
또 미안시럽더라…
마당냥이 밥그릇도 보니 비어있네.
아이구 니들도 오늘 밥 굶었구나~
그래도 니들은 사냥해서 먹기라도 하지 봉덕이는 쫄딱 굶었다.
두루두루 마당식구들 챙겨주고 들어오니 세상 움직이기 싫더라.
그래서 그냥 뻗었다.
오늘 아침…
밤새
드라마같은 웃긴 꿈 두 가지를 연달아 꾸고 일어나 한참 웃었네.
뭐 그런…
어제 못치운 김장 뒷설거지를 한바탕 하고 치우고나니 좀 봐줄만 하다.
남은 김장양념은 지퍼백 여섯개에 나눠담아 냉동고에 넣었다.
내년 일년 각종 김치양념으로 찌개양념으로 아주 요긴하게 쓸거다.
속이 후련하다.
아이들은 엄마 혼자 김장했다고 멀리서 맘과 몸만 동동…
큰놈네는 하필 주말에 회사에 일이 터져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었고
작은아이는 학회발표다 논문준비다 뭐다 위에서 쪼아대서 허구헌날 연구실에서 밤을 새야 하는 모양이고
막둥이는 졸업준비도 해야하는데 회사도 다니고 있어서 하루가 짧다고 하니…
하필 김장일정을 이리 잡은 내가 잘못이지 괘안타!
어쨌든 김장 다 했다!!!
아주 맛있게 되어서 어제 한 포기 오늘 아침 한 포기 먹어치웠다!!!
올해 지랄맞은 날씨 때문에 김장배추 농사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반전일세~
속이 덜찬 배추가 아주 식감이 좋고 달아~
거기에 양념도 간이 딱 좋아서 기맥히네~
자화자찬이 늘어졌다!!!
좋은 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