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내 귀는 둘이지만...

산골통신 2023. 4. 18. 12:44

언덕밭 위에는 산골 동네 제일 끝 두 집이 나란히 있다.
옛날에 이 언덕밭 터에서 살다가 위로 집지어 이사간 거다.

산녀가 언덕밭에서 일하고 있으면 그 집 다니러온 아들네들이 아는 척하며 수다 한바탕 떨고 간다.
요새는 아흔일곱 금동할매 위독하여 아들네 딸네들이 번갈아 보초서고 있다.

어제는 고추를 한참 심고 있는데 세째 아들이 심심했던지 계속 말을 걸며 안 떠나...
산녀는 일하는 틈틈이 상대를 해주며 듣고 하는데 그 옆집 아저씨까지 합세해서 이런저런 말을 건다.
둘이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상대는 온리 산녀!!!

하이고 이 분들아~ 산녀 귀는 둘이지만 입은 하나요!
차례차례 말을 하면 안되겠소?!
서로 경쟁적으로 다른 주제로 산녀에게 말을 거는데 동시다발로 대답을 해줘야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그러다 좀더 기가 약한?! 아저씨가 질려서 물러서고 말건네기에서 이긴?! 좀더 기센 아저씨가 큰소리로 막 떠든다.
산녀가 알아듣던 말던 자기 이야기에 심취해서리...

그 중 한 사람은 산녀를 봄처녀라 부르고
또 한 사람은 산녀를 꽃집아지매라 부른다.
아마 전화목록에도 그리 저장해놨을듯~ 틀림없다!

이 산녀를 산골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가까이 살고 또 젊고?!
대화가 되는 사람이라 생각들 하는가보다.
때론 산녀가 지나가는 걸 어찌 아는지 바로 나타나는 걸 봐서는 창으로 내다보고 있는거 아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하여간 어제는 참 웃기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했는데 한참 지나고나니 그들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한 집은 어려서 도시로 떠나 다시 들어온 경우다.
농사는 안 짓고 위중한 부모 때문에 잠깐 와있는 것이니 얼마나 심심하고 적적하겠노...
한 집은 도시에서 살다가 건강 때문에 들어와 사는 것이고 농사는 안 한다.
유일하게 이웃해주고 자주 눈에 띄는 사람이 산녀인거라...
왜냐하면 그 집들 주변이 다 산녀네 밭이거든!
그러니 산녀만 밭에 일하러 가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불쑥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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