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어느날~

산골통신 2022. 1. 23. 10:22



문득 김치부치개가 땡겼다.
그간 느끼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말이다.

2년 묵은 김장김치를 독에서 꺼내와 반은 쫑쫑 썰어서 밀가루 반죽해서 개고 반은 돼지고기 넣고 들들 볶았다.
해마다 김장김치가 조금 남을 때도 있고 모자를 때도 있는데 2년 전 김장김치가 두어 통 남았더라. 그래 고이고이 묵혀두었지~
작년 김장김치는 마지막 국물까지 먹어치우는 바람에~ 묵은지는 좀이라도 남겨둬야 한다.
이번 김장김치는 넉넉히 했으니 묵은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싶었는데 초장부터 쑥쑥 줄어들어가는 김장독이여~ 이 뭔일?!

김치부치개와 김치볶음은 묵은지로 해야 맛나다!
아이들이 이번 김장김치로 했더니 제맛이 안 나더라면서 뭐라 하더라~

산녀가 그간 먹었던 김치 중에 가장 맛있었고 기억에 남았던 김치는 몇년전 스코틀랜드에 갔다온 다음날 허겁지겁 먹었던 소금에만 절여서 고추가루 입힌 이름만 김치였다. 얼마나 개운하고 맛있었던지 한대접을 다 비우고 또 먹었었다. 아~ 느끼한 유럽 음식들~ 줘도 안 먹어!

묵은지는 김치국물까지 알뜰히 먹어줄 수 있다.
국물은 냉면이나 국수 말아먹으면 기가 맥히지~
그 맛을 본 아이들이 간간이 김치국수 해먹자고 그러더라구~
어제도 김치국수 말이 나왔는데 김치볶음밥이 더 땡겨서리 ㅎㅎㅎ
날도 서글프고 찬음식 먹기 그렇잖냐~ 뭐 이러면서리...

옛날 엄니집에서는 끼니때가 되면 동네 아지매들 할매들 모여드신다.
첨엔 늘 그런 광경이었으니 무심히 보냈는데...
정작 커서 산녀가 부엌일을 하게 되었을 때는 동네 어르신들이 좀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끼니때만 되면 언제 어느새 오셨는지 대청마루에 옹기종기 앉아계셨고 그럴때면 밥이 당해내질 못해 콩죽이나 부치개가 등장하곤 했더랬다.
엄니도 그런 상황에 익숙하셔서 늘 식구들이 많으니 콩죽이나 콩나물죽 등등 끓이시다가 삽작거리에 인기척이 두런두런 나면 물 한바가지 죽솥에 들이붓곤 하셨다.

부치개를 철따라 나는 채소로 할작시면 그 담당은 산녀였지.
해도 해도 끝이 안 나...
아무리 적을 꾸어도 빈접시가 계속 들어와...
그 빈접시가 더는 안 들어오면 다 드신 거다.

울 엄니 그러시더라구~ 너희들 클때 뭐 배불리 먹일게 있었나...
밀가루를 배급해주던 시절이었으니 적이라도 꿔서 먹였지.
한참을 빈접시 들고 정짓간 쪽문을 들락날락하다가 더는 안 오면 다 먹었구나~ 싶었단다.

그 동네 어르신들 이젠 다 북망산 가시고 안 계시지만 그 중 유난하셨던 어르신 두분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한 어른은 당신 다 드시고 집에 홀로 있는 영감 갖다준다고 적을 척척 포개서 가져가셨더랬다.
한 어른은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다고 열심히 드시고...

마을에서 엄니집이 제일 잘 살았다나... 대문간 아랫채방에는 늘 일꾼들이 그득 들앉아 새끼줄이랑 가마니 짜고 있었고
그네들은 세끼 밥만 먹여주면 되는 사람들이었단다.
뉘 오라한 적도 없고 가라하지도 않아서 늘 그렇게 내 어릴적 아랫채에는 일꾼들이 북적였다.
대문밖에는 걸인들이 수시로 지나갔고...
그런 걸 못 봐넘기신 노할매와 상할매 그리고 울 엄니는 그네들을 좀이라도 거둬먹이셨단다.
그래 저집에만 가면 먹을게 있다고 소문이 그래 나서 좀 힘드셨다는 얘기도 하셨었지.
올망졸망 아이들은 커가고 식량은 한정되고 먹을 군식구들은 줄지 않고...

제사나 명절이 닥치면 더 심해졌단다.
남들이야 주는대로 먹고 가지마는 친인척들은 대보름이 지나도록 안 가시고 눌러사셨다고...
그래 그시기에 엄니 건강을 많이 해쳤다고 그러셨다...
제사가 일년에 열댓번~ 거기다 초상이라도 나면 소상 대상 뭐 기억도 안 나는 모든 절차를 해내느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그래서 산녀는 제사도 명절이 싫어졌는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 고생을 지켜보고 같이 했으니...
그립지도 않고 아쉽지도 않다.

그래서 내생일 조차도 번거롭다고 조용히 보내게 해달라고 할 정도다.
못내 아쉬워하던 딸아이가 기어이 지엄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케익을 사와서 초를 붙여주네.
며칠전 지나간 내 생일날... 기쁨보다는 이 동지섣달 추운날 어찌 몸을 푸셨을꺼나... 그것도 원치않는 막내딸을... 엄니는 낙태를 원하셨고 아부지는 낳기를 원하셨다. 산아제한이 되던 시기라 시내 병원엘 가려고 외할머니와 나서던 길에
평소 그 시각에 집에 없으셨던 아부지가 갑자기 들어서시더란다...
그래 낙태하러간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못 가게 완강히 막으셨다나...
아이고~ 울 아부지 왜 그때 집에 오셔서는... 말리지 마시지...
아들셋 딸 둘이나 있으면 족하지~
지금도 산녀 태어난 것에 원망이 좀 섞인다 ㅎㅎㅎ

그래 내 생일은 늘 울 엄니 고생한 것만 떠오르고 태어나서 기쁘고 좋고 뭐 그런 감상은 없다.
그러니 생일 축하 어쩌고는 구찮다.

뭐 그래도 이번 설명절은 나만 생각할 순 없는 일...
나무꾼과 아이들에게 명절 분위기는 느끼게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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