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어마무시한 바람 또 바람...

산골통신 2021. 12. 1. 10:33





밤새 바람소리 대단대단...

마당식구들 안 추울까 걱정은 되었지만 뭐 더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걍 들어왔다.
냥이들이야 따뜻한 곳을 기맥히게 찾아내는 재주가 있으니 걱정없는데...
봉덕이는 개집이 있으나 마나 흔들그네 위를 포기하지 않을거니께...

비인지 눈인지 분간안되는 것들이 마구 쏟아지고...
바람에 뭐가 굴러댕기는 소리들 속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완전무장 뒤집어쓰고 마당엘 나서니 역쉬나~
오만잡동사니들 굴러댕기네~
잘 놔뒀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바람이 거셌던지 못 이기고 날라댕겼나벼~

주섬주섬 거둬들여서 제자리 찾아 넣고 집안팍 살피고 한바퀴 돌았다.
닭집은 안 열어줬다. 이따 추운데 또 올라오기 싫어서... 참새들 수십마리가 닭집 안에 떼지어 살고 있더라...
닭모이를 같이 먹고 사는듯...
대신 나락푸대는 안 뜯으니 걍 봐줘야하나...

비온뒤 추위라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닭집 물통을 발로 툭툭 차니 얼음이 깨지는 걸 봐서 꽝꽝 얼지는 않은듯하고

해가 뜨긴 했어도 산너머에 있어서 아직 마을은 그늘이다.
냇가 건너 마을은 진작 아침햇살 그득인데
우리 마을은 서향이라 아침 해가 늦다.

마당 한구석에 있는 한데부엌 가마솥 뚜껑이 반쯤 열려있는 걸 봐서 어젯밤 바람의 세기를 느낄 수 있었네...

두루두루 뒷골밭 아쉬람터까지 한바퀴 돌아보고 왔다.
이것저것 덮어둔 천막들이 벗겨져 두루 단속하고 비닐하우스는 안 열어줬다.

마당냥이들이 봉덕이밥이 맛있는지 자꾸만 탐을 낸다.
봉덕이는 그걸 또 뭐라 안 하고 냅둔다.

아이들이 뼈다구를 많이 구해와서 주는데 봉덕이녀석 여기저기 숨겨놓고 몰래몰래 하나씩 파먹나벼...
묻어놓으면 냥이들이 못 먹는다 그리 생각하나?!
어차피 냥이들은 뼈다구 못 묵는디?! 본능인가벼~

개나리 덤불 밑에 묻어놨는지 한참을 보초서고 있더라고~
딸아이가 송아지옷을 구해 입혀놓으니 참 볼만하네~

배추를 다 저장해놓고 하나씩 갖다 먹는다.
겨울엔 배추적이지~
속꼬갱이는 쌈으로 먹고 중간치들을 적으로 꿔먹는다.
겉껍디는 우거지로 해먹고~

며칠전 배추 절여간 친구가 술 한병을 주고가서 그놈하고 같이 먹었다.
함께 마실 술벗이 있으면 참 좋은데... 이 궁벽한 산골짝에 사니 쉽게 올 사람들이 없네...

먼데 반찬을 해보낸 곳에서 연락이 왔다.

<여기 오래 살면서 이렇게 진수성찬으로 먹어본 것은 처음이라고
너무 맛있고 정말 음식잘한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
똑같은 재료로 어떻게 이렇게 맛을 낼 수 있냐고! 참 잘 먹었다고...>

참 고맙더라... 괜한 오지랍으로 평범한 시골반찬을 해보낸게 아닌가 싶어서 은근 걱정했는데...
다음엔 좀더 신경써서 좋게 보내드려야지...

이번 주말에 서른포기 배추 절여서 실어보내야하고
다다음주에 손님들 대거 오시니 송년회 겸해서 맛난거 해먹고 놀아야겠다.

문득 생각한다.
나는 나를 위해서 무얼 하고 사나...
지금 살아가는건 무얼 위해서 사는 걸까..
정작 나는 나를 위해서 살고 있는 걸까...
이런거 배부른 고민인가...

김장끝나고 월동채비 하고 들앉아 구들장지니
별 생각이 다 드는구나...

아이들이 드라마랑 영화보라고 이것저것 알려주고 갔다.
책은 다 읽었고 새로 읽을 책을 구해야하는데 뭐가 좋으려나...

이 겨울 심심치않게 보내려면 소일거리가 많아야 한다.
그래야 잡념이 안 생기지...

일년 가까이 끼고 살던 잡념부스러기 하나...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너무 안 하는 것도 그렇지만 너무 과한 것도 부질없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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