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15,000보를 걷다.

산골통신 2021. 5. 24. 19:22



뭐하느라 그랬는지는 모른다.
뭐 하여간에 밭고랑 헤매다 보면 저 정도 걸음은 보통 걷는다.

식전에 감자골에 가봤지...
언제 풀 메줬냐 말도 못 꺼내겠더만...
그간 비는 찔끔찔끔 자주 왔고 햇살에 마를 새 없이 또 오고 왔으니...
풀들은 제세상 만났더라.

산골 이웃들은 모내기하느라 다들 정신없고...
아저씨들은 모판 쪄내어 싣고 와서 이앙기 몰고
아지매들은 물장화신고 모판 나르고 논에 들어가 뜬모 빈모 모들구느라 허리 펼 새 없으시더라...

저 일 산녀도 한 십여 년 했었지...
물장화 보면 외면부터 하고 본다.
그만치 저 일은 힘들다.
진창 논에 들어가 걸음 걸음 떼기도 힘든데 뜬모랑 빈모 잡아가며 다 메꾸노라면
온몸이 안 아픈데가 없더라...
그날 저녁엔 그냥 암것도 안 하고 밥도 안 묵고 그냥 널브러져야했었지...
모 바구니는 무릎에 자꾸 부딧쳐 나중 보면 멍이 들어있더라.

모 이앙기가 모를 다 심는다 해도 기계라 구석구석 세심하게 다 못 심어내서 사람 손이 일일이 가야한다.
논바닥이 고루 평평하면 잘 심겨지는데 조금이라도 흙섬이 생기고 울퉁불퉁하면 이앙기가 심고 지나가도 모가 물 위로 떠 버린다...
그리고 논 네 귀퉁이는 이앙기가 못 심고...

감자골 풀 메면서 멀리 보니 이앙기 한차례 지나가면 아지매 둘이 논에 들어가 모들구더라... 모를 보충해서 심는걸 모들군다고 이 동네는 그러더만...
착착 손발이 맞아 돌아간다. 다들 상일꾼들이셔...

근데 맴이 짠해지는건...
논마다 전동차가 두어 대씩 있더라는거...
요샌 다들 전동차 타고 댕기신다. 허리 무릎이 다들 안 좋으셔서 아지매들 전용 자가용이다!!!
아저씨들은 오토바이~
절대 논으로 밭으로 걸어댕기지 않는다!!!
말이 아저씨 아지매지... 할배 할매들이여...
연세가 여든이 제일 많고 일흔은 젊은축이여...
아흔 훨 넘은 희득이할매도 전동차 타고 댕기시면서 밭 풀 메시던걸...

그런 와중에 아직 육십도 안된 산녀는 늘 깨갱하고 살아야한다는겨...
힘들단 소리를 몬햐!!!

뭐 하여튼 감자골 풀 메다가 땅이 아직 질어서 풀메기가 여엉 진척이 안 나가네..
내일 비온다는데 그럼 더 질어지잖여...
오늘 중으로 풀 뽑아야 되는데 이거 참 그렇네...
밭고랑은 왜그리 길고 많냐...
하다하다 여나문 골 하고 철수했다.
이번 비 그치고 땅 마르걸랑 다시 와야지~ 할 수 없네!
이리 밭이 질어서 풀 뽑으면 도로 살아... 하나마나 헛수고여!

상당 고추밭골에 물 주려고 갔다가 연못가 아이리스 두 포기 파갖고 왔다.
아무래도 여기가 야들에겐 환경이 안 좋은가벼... 처음 화분에서는 수세가 좋은 아이들이 연못가에서는 자잘해져버린 걸 보면...

파갖고 내려와서 화분 두 개에 나눠심고 물을 주고 반그늘에 두었다.
일단 여그서 살아봐라... 더 좋은 자리 찾아서 옮겨줄게!

상당에 일하러 올라갈 때는 봉덕이를 데리고 가는데 고추밭 일 할 때는 못 데리고 갔었다. 고추 모종 막 밟고 넘고 댕겨서...
근데 오늘 봉덕이가 하도 심심해하고 일가는 산녀 쳐다보는 눈망울이 넘 짠해서 데리고 가봤지!!!

고추밭 물 주는데 이놈이 근처도 안 오네?!!!
아하! 이놈이 물을 싫어하더라... 거 참 잘 됐네 ㅎㅎㅎ
산녀는 고추밭에서 일 잘 하고 봉덕이는 이 산 저 산 잘 뛰놀고~

아까 낮에 봉덕이가 마당에서 뭘 갖고 놀길래 뭔고 하고 가보니 아이쿠! 새끼뱀이네~ 꽃뱀 유혈목이여...
냉큼 괭이를 갖고 잡아버렸다.
내 영역엔 안 된다 이놈들아...
오늘 밭고랑 풀 메면서 죽인 잡풀들 목숨이나 니 목숨이나 다를게 있더냐...
할 수 없지... 살생유택이다!

망할 마당냥이들~
오늘부터 니들 밥 없다!
밥값 제대로 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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