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에서 길을 잃다.

산골통신 2008. 4. 29. 12:08
또다시 산엘 올랐다.

이번엔 다시 한번 더 가보려고 계속 침을 발라놓던 산이었다.
몇년 전 아이들과 함께 무수히 올라던 산인데...
아이들이 크면서부터 안 가게 되었던가...

산에 오르게 되면 항상 하는 차림새로 산길로 잡아들었다.
첫번부터 취나물이 듬성듬성 있다.
요새 한참 올라오는 넘들이라 그런지 눈에 띄네.

다른 산나물들도 좀 알았으면 싶어 이것저것 눈에 남다르게 뵈는
산나물들을 뜯어다 따로 봉다리에 집어넣는다.
오늘은 큰 푸대를 하나 짊어지고 나섰다.
이런저런 나물들을 가져다가 금동할매한테 여쭤봐야지.
이거이 대체 멍교? 먹는겅교? 아잉교... 하고.

산에 가면 항상 만나는 것이 무덤이다.
올라가는 길에 두릅을 좀 땄다. 두번째 따는 거라 좀 까시락지고 억시다. 그래도 데쳐놓으면 먹을만하지.
두릅순은 처음 올라온 것이 가장 좋다. 그 철을 놓치면 두릅맛 다시 보기 어렵다.

두릅 한봉다리 만들어 푸대에 넣고 곧바로 산으로 올랐다.
오며가며 만나는 무덤들에 일일이 인사 여쭙고... 지나가겠노라고...
후손들이 알뜰히 돌보는 무덤들이 있는가 하면
상석과 망부석까지 그럴듯하게 서 있어도 버려진 무덤들이 있다.

이젠 취가 어느방향 어디쯤에 있을지 대충 알아먹어
조바심 내지 않고 길을 걷는다.

이름모를 봄꽃들이 이쁘게 피어있다.
새소리 바람소리 느껴가며 걷는다.

이 산으로 들어가 한참 걷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산밖으로 나오게 되었네...
다시 옆 산으로 들어간다.
취를 만나면 취를 뜯고 이름모를 나물을 만나면 한참 딜다보고...
나무 순들 올라오는 것도 구경하고... 나무순들은 이제 좀 억세져서 못 뜯는다던가...

아... 더덕이다. 이거 진짠데... 이거 좀 캘까? 향이 대단하다.
아차. 손에 호미가 없다. 낫 뿐인걸... 아깝다만...
나중에 다시 오마. 눈으로 점을 찍어놓았다.

한참 가다보이... 아는 길이다.
아차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인 그 길... 큰골가는 길이다.
아.. 이산이 이짝으로 연결되어 있구낭... 알았다.

신나게 걸었다. 아는 길이므로...
사람 하나 겨우 발 디디고 걸을 수 있는 길... 옛날엔 신작로만치 반들반들 넓었다는 길...
마을 아이들이 소 한 마리씩 몰고 줄을 지어 소풀띠끼러 큰골까지 갔었다는 그 길...
해거름 황혼무렵이면 소들이 집찾아 걸어오는 모습이 장관이었더라는 그 길...

이제는 지게도 못 지고 다닐 만치 우거지고 좁아져...
조심조심 걸어가야 하는 길이 되었다.

구불구불 산을 돌아간다. 이웃 마을이 보인다.
한참 가니 또 다른 이웃마을이 보인다.
얼마만치 온 걸까...

무덤 하나 나타난다. 어쩌면 여기다 무덤을 쓸 생각을 다 했을까...
벌초하러 한번 오려면 애먹겠네...
물건너 산너머 와야겠네.
그래도 벌초는 해마다 한듯 깨끔하다.

여기가 큰골 시작인가... 바윗덩이들이 골짜기 한가운데 가로질러 주욱~~ 뻗어있다. 물이 잇었으면 계곡이라 할 만한데...
물은 아래로 다 잦아들고... 돌이끼만이 덮여져있다.

전에도 여기에서부터 길이 없어 해멨었지.
한번 길을 찾아볼까.
이 골짜기 위.. 꼭데기에 뭐가 있다고 했지?
우포늪 저리가라 할만찬 늪지대가 있다고 했나?
그것이 몇년 전 얘기지? 한 사십여 년 전 얘기지 아마...

바위들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이 바위 끝에 큰 방구가 있다나...
어린시절 기억에 큰 방구라 해봤자~ 그냥 바위겠지...

올라가고 올라가도 하늘이 안 뵌다.
다시 내려가기도 뭐하다.
기왕 오르기 시작한거 계속 가야겠다.

한참을 가시덤불과 까시나무와 쌈쌈해가며 오른다.
숨이 차다.
오르다 오르다... 갑자기 생각했다.

나 여기 왜 왔을까... 취뜯으러 왔으면 딴 산으로 가야 할낀데
이곳은 습한데... 습한 곳엔 취가 없어...
왜 여기로 길을 잡아들었을까.
가다 말고 서서 생각한다.
한발 띄기 힘든 가파락진 비탈이다.

그저 꼭데기까정만 가보자. 거기가면 능선을 잡아 탈 수 있을꺼야.
이 산 너머에 큰 절골 작은 절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더라지...
지금은 없다지.
한번 그 흔적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내 맘속에 있었겠지.
하지만 수십년 지난 다음에 그 흔적 보자 하니.. 먼 소용일까.

힘이 든다. 이 머꼬? 내 이 웬 생고생을 사서 하는 거지?
이 길 아닌 기를 가노라고... 기를 쓰고 올라가는 이 심사는 멀까?
인간은 왜 이렇게 생겨먹은 걸까...

지게길이라도 찾아보려고 애를 썼으나...
짐승들이 다닌듯한 그런 길만 눈에 띈다.
에라... 사람길 없으면 짐승길이라도 가자 싶어
그짝으로 자꾸만 따라간다.

저만치만 가면 하늘이 보일꺼야...
햇살이 들어오는 걸... 기를 쓰고 오른 끝에... 정상이다.
우와....
바위위에 올라섰다. 기맥히다. 나 자신이.

헌데 그 꼭데기에서 만난 취밭이여... ㅠㅠ
털석 주저앉았다. 내 너를 만나려고 이 고생을 했다니? ㅋㅋㅋ

거기서부터 산불난 흔적이 보인다. 불에 탄 시꺼먼 나무둥치들이 여기저기 있다.
아하... 여기까지 산불이 미쳤었구나... 장장 나흘간 껐다니 대단했었던 불이었네...

내가 도데체 어디까지 와있는지 몰라... 한참을 둘러보았다.
우리 마을이 안 뵌다. 이웃마을도 안 뵈인다.
아이구야... 너무 멀리 왔구나...

능선을 잡아타고 자꾸 걸었다. 걸으면서 눈에 띄는 산나물들을 뜯어넣어가며...
숨이 차면 쉬어가며...

아침에 물도 한병 넣어갈까... 싶었으나. 괜시리 짐이 되는 것 같아 냅뒀다. 머 후회는 안 된다마는...

쉬어쉬어가며... 산길을 걷다보니...
눈에 띄는 이상한 표식...

시멘트로 네모지게 만든 표식... + 표시가 되어있는 이 작은 시멘구조물이 도데체 무얼까?
산 정상이라는 표식일까?
여기만 풀을 깍고 다듬은 흔적이 있다.
그리고 길을 낸 흔적도... 이 꼭데기까지 먼 일일까?
여기는 머하는 곳이지?

그 곳에 서서 보니... 산골 마을들이 마치 소인국처럼 보인다.
면소재지도 저멀리 보인다. 아이구... 저렇게 작았어...
찻길들이 구불구불.. 끝간데 없이 나있다.

이 길로 가야할까... 저 길로 가야할까...
한참을 오며가며 헤매다가...
좋아보이는 길같은 길로 접어들었는데..
한참을 가다보이... 이건 아닌거 같애. 방향이 틀리잖아.
봉우리가 이게 아닌데...
저 봉우리로 가야하는거 아닐까? 갸웃갸웃...

끝없이 산으로 산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냥 미친척하고 저 산자락으로 계속 가볼까.
그럼 어디가 나올까?

잠시 머리를 식히고 다시 길을 찾아 잡는다.
이 길일까? 아님 저 길일까...
아니야... 방향을 확~ 잡아틀었다.
이 길로 가자. 그럼 마을이 나올꺼야.

칡덤불이 몸을 막는다. 몸을 구부려 기어나가기도 하고 타넘기도 하고
낫으로 댕겅 잘라버리기도 하고...
기사덤불과 가시나무에 수없이 찔리기도 해가며 길을 걸었다.

아... 여기다. 길을 이제 찾았다.
우리 마을에서 바로 보이는 산꼭데기다.
그러고보이 오늘 내가 산 몇개를 넘은거냐...
이제사 제대로 찾았네. 휴우...

아까까지 헤맸던 그 과정들이 꿈만 같다. 나 집에 못 갈줄 알았으...

발길에 익은 능선길로 접어드니 몸이 안심을 했는지
자꾸만 자빠질라 한다.

눈에 띄는 무덤... 무척 반가웠다. 이렇게도 무덤이 반가울 수가~ ㅎㅎㅎ
여기로 주욱~ 한참 내려가면...
솔숲너머 야생초밭이 나온다.
다 왔다. 쫌만 더 힘을 내자.

오늘은 취나물 반푸대... 이런저런 이름모를 산나물들 한봉다리...
이산 저산 헤집고 다닌... 유쾌한...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