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산에 가다

산골통신 2008. 4. 28. 08:36
아침먹고 부지런히 서둘러 산에 올랐다.
누가 잡아끌고 간다면 절대로 안 가는 사람이
먼일인지 봄비 맞으며 바람이 났는지... 요새 부지런을 떨어가며 산에 간다.

아침에... 혁이보고 언넝 퍼뜩 밥무라~ 해놓고
설거지 눈깜짝할 사이에 해치워버리고

백반주머니 옆구리에 꿰차고 긴 장화신고
팔토시 두꺼운 넘으로 해차고 낫 하나 들고
봉다리 봉다리 허리춤에 매달고 모자 하나 덮어쓰고 나섰겠다.

요즘 이런저런 산나물로 볶음밥 비빔밥 해주고 먹느라 바쁘다.
오늘 아침에는 참나물이랑 삼동추랑 두릅이랑 비빔밥 해줬다.
어제 저녁에는 취나물이랑 머구랑 참나물이랑 해주고.
거기다 방아잎 뜯어넣은 된장국 곁들여서

방아잎은 두어 개만 뜯어넣어야 한다. 이넘은 향이 얼매나 강한지
다른 나물의 향을 다 잡아묵는다.

어제 산에 올라 취나물을 한푸대 뜯어다가 할매한테 드렸더니만
대처사는 자식들한테 보내신다네...
에구 그거 얼마 된다고 그러시우... 걍 드시지...
이건 걍 드시고요~ 내일 또 지가 해다드릴께요~~
해서 어제는 취나물 데쳐 무쳐먹느라고 바빴다나~ ㅎㅎㅎ

오늘은 아침부터 올라갔다.
어제 저짝 산을 훑었으니 오늘은 이짝 산부터 시작해야겠구나.
낫으로 까시덤불을 헤쳐가며 간다.
어디 취밭이 있을까...

구이장할배는 금방 금방 한푸대씩 해오시던데 말야...
어딘가 취밭이 따로 있는 것이 분명해.

내도 오늘은 깊은 산엘 좀 가볼까...
궁시렁거렸더니만~
옆에서 할매 왈:
구이장할배야 깊은산이 이력이 붙었으니까 그렇지.
깊은산만 가시니까 얕은산은 시퍼보고 안 갈꺼 아니냐~
우린 얕은 산에서 해오면 되지~ ㅎㅎㅎ

딴엔 그말도 맞다 싶다. ㅎㅎㅎ

일단은 얕은 산부터 훑어나가자.
드문드문 취가 눈에 띈다.
아직 어린 넘이다. 어제 하도 살이 통통 찐 넘들을 뜯어서 이건 성에도 안 찬단말다.
그냥 지나친다. 너들은 나중에 보자.

한참을 옆으로 산을 탔을까...
벌목을 한 듯한 곳이 나온다.
문득 발이 멈춰진다. 우와....
취밭이다... 그만 낫이고 뭐고 팽개치고 마구 뜯었다.
오늘은 첫번부터 운이 좋네.

한참을 뜯고 또 산엘 오르니...
한참을 올라가도 취가 눈에 안 띈다.

이제 내도 이력이 붙어서 취가 어느 쪽에 자라는지 대충은 알겠더라 말이지.
해서 대충 그런 산쪽으로만 길을 잡아 나가는데...
드문드문 취들이 제법 있다. 역시.

한 푸대를 어느정도 채웠을까. 지친다. 한참을 쉬고...
또 산을 오른다.
이대로 산꼭데기까정 올라가서 다시 내려올까.
비탈은 타기 어렵고 낭떠러지 떨어지면 낭패니까.

물이라도 갖고 왔으면 좋았을껀데... 목이 마르다.
산나물 순들이 많으니 꼬장도 갖고 왔으면 좋았을꺼나? ㅎㅎㅎ
그러자면 곡차도 따라붙어야지?
그러자면 한살림 채려서 베낭짊어지고 와야한단 말다. ㅎㅎㅎ
번거롭지...

얼마나 산을 타고 올랐을까. 어느덧 푸대는 반이상 차있고
산 말랭이 능선으로 길을 잡았다.
음... 이짝은 어제 훑었던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이짝은 수년 전에 산불난 쪽인데... 오늘은 이짝으로 잡고 가볼꺼나.
원래 불난산에 나물이 성하다던데.. 어디 한번 가보자.

불이 난 뒤에 시에서 대대적으로 소나무를 갖다 심었단다.
그 나무들이 이제 제법 눈에 띌 정도로 자랐네.
불 난뒤 까시덤불과 싸리나무와 칡덤불이 무성했는데...
이젠 소나무들이 제법 어울려 자라고 있더라.

산판트럭과 포크레인이 불에 탄 나무들을 실어내느라
길을 낸 자리가 눈에 띈다.
그짝으로 갔다.

항상 오르던 산이 아니라 산 너머 또 산으로 가는 길이다.
겁도 없이 그짝으로 길을 잡았다.

산불난 흔적은 이제 아는 사람만 알게 끔 그 흔적이 지워져있고
그 위에 다시 풀들과 나무들이 무성히 빽빽히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옛날처럼 다시 되러면 하세월이 걸리겠지만...

낫으로 가시덤불과 나무들을 헤쳐가며 한참 길아닌 길을 갔다.
이곳이 어디쯤일까. 하늘만 보이네..

그러다!!!

아하하하하~~~ 입이 마구마구 벌어진다.
이야.........
이곳은 사람들이 안 온 곳인가봐...
취밭이야... 대단한걸.. 어린 넘들도 아니고 나먹은 넘들인걸~
제법 키가 크고 통통해.
이짝 저짝 다 취다.

오늘 아주 운이 좋구나.
오늘 취밭을 세 군데 발견했다.

한 발 띌 새도 없이 그냥 퍼질러 앉아서 부지런히 뜯어넣었다.
푸대가 그득하다. 제법 무겁다.

등산을 하게 되면 길을 가느라 바빠 여유가 없는데...
이렇게 나물을 뜯으며 오르는 산은..
쉬고 싶으면 쉬고... 가고 싶으면 가고~
마음대로 여유있게 가는 산이라...
내한텐 딱이다.

가다 말다 눈에 띄는 취를 뜯어넣으며
산냄새 바람냄새 풀냄새... 한껏 들이마신다.
무슨... 참 기분좋게 해주는 향들이 난다.
산에 오면 마음 깊숙이... 몸 깊숙이... 개운해짐을 느낀다.
한바탕 등목을 한 느낌이다.

푸대를 울러매고 산을 내려온다.
거진 점심때가 된 듯.. 배꼽시계도 뭐라 하고~
목도 타고...

내려오는 길로 잡는다.
길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가느라 길이 더디다.
몇년 전만 해도 이 길이 신작로처럼 났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안 다니는...
나처럼 일삼아 다니는 사람들만 오가는 그런 산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이 산을 올랐으니~
내일은 이 옆 산을 올라야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