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겨울비

산골통신 2007. 11. 25. 02:19

비온 다음 날이 추워지는 건 당연지사...

허나 그 당연한 계절이 희한하게 돌아간다.

새벽... 비가 주룩주룩 지붕에 부딧치는 소리가 들린다.

잠결에 더듬더듬 나가본다.

 

비설거지를 해야할 것들이 있는가~ 한참 눈을 비벼가며 머리속을 뒤집어본다.

방앗간도 정리했고 왕겨도 치워버렸고

콩단은 덮어놓았고 무시레기들도 거둬들였고 천막도 접어들였고

음... 안 뛰쳐나가도 되겠구나~ 싶어

다시 겨들어와 잠이 든다.

 

하루걸러 또는 매일 비가 새벽마다 뿌린다.

눈이 오다가 아침엔 다 녹아버리기도 한다.

 

그런날 아침이면 안개가 자욱하니... 산골짝 작은 마을을 휘감아 감싸

산 아래 물건너 마을에선 안 보이기 일쑤이다.

 

이거 겨울 맞나...

폭설이 예상된다고 일기예보는 겁을 주고

아이들은 눈썰매 타야한다고 눈아 눈아 오너라~ 노래를 부르고...

할매랑 선녀는 마늘밭 양파밭 아직 비닐을 안 덮었는데

아직 배추 안 뽑았는데... 감낭구 감도 안 땄는데~

머 그런 걱정만 하고 앉았다.

 

쌀방아를 마저 찧어야 하는데

현미를 찧으려면 있어야 하는 부속품 하나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려...

쥐가 물어갔나~~ ㅎㅎㅎ 이 구석 저 구석 다 뒤져봐도 없어...

마침내 심심하면 들르는 고물장수한테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안 그러고는 멀쩡히 잘 모셔뒀던 그넘이 왜 없어져...

 

고물장수... 한 서너명 정도가 이 골짝 저 골짝 돌면서 휩쓸어간다.

옛날 항아리들이나  골동품들... 농짝 궤짝 뒤주 머 등등...

녹슬고 망가진 농기계같은거 머 하여간 다 가져간다.

그러고는 휴지 두루마기 하나 던져주고 간다.

에그~ 강냉이나 있음 주지~ 휴지 많은데...

 

농사철 쥔장이 집에 없으면 집을 마구 뒤져가기도 한다.

멀쩡한 애들 자전거도 슬쩍 트럭뒤에 얹어가기도 한다.

 

이 산골짝 마을에서 요주의해야 할 인물들이

개장수하고 고물장수다. 아주 찍어놓았다.

몇년전엔 이웃에서 애지중지 기르던 비싼?? 강아지들이 하나 둘씩 슬금슬금 없어지기도 했다.

그 강아지들 내한테 무수히 얻어맞던 넘이었는데...

밤마다 울집 병아리들을 잡아묵어서...

 

해서 현미찧기는 올스톱되어버려...

농기계센타 직원이 부속품가져 오기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해서 요즘 맘이 여엉~~ 거시기 껄쩍지근~~하다.

기다리는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날은 그다지 안 추우나 그래도 무를 밭에 그대로 둘 수 없어 뽑았다.

헛간에 무를 날라다 저장하고  무시레기들은 헛간안에 이리저리 빨래처럼 걸쳐놓았다.

새끼줄로 엮어 매달기도 구찮고해서... 그냥 줄을 이리저리 쳐서 걸어버렸지.

 

배추는 아직 김장을 할 수가 없어 그냥 냅두고...

한 영하 오도 정도 내려간다하면 뽑아무져야겠지.

아직 알이 덜 차서 시퍼런 김장 하게 생겼다만~ 머 그래도 어쩔 수 없지비...

 

가을에 무 농사가 별로 시원찮아 무씨를 더 심자~ 해서

새싹길러먹는 무씨라나 머 그런거이 하나 있길래 냅다 갖다 심었더니만~

나오라는 무는 안 나오고 엉뚱한 달랑무가 나왔더라나~ ㅋㅋㅋ

해서 오늘 달랑무 한 구루마 뽑아서 가져다놓았다.

졸지에 총각김치 담게 생겼다. ㅎㅎㅎ

 

오늘 다듬다 다듬다 못 다듬어서~ 내일 또 해야한다.

다듬기가 구찮아 그렇지 소금에 절여놓으면 김치가 되니까...

 

이웃 태국아지매는 질금콩 타작하고 난 콩단을 또 수북히 부어주고 갔다.

저번엔 팥이랑 흰콩~ 이번엔 질금콩~ 아마도 다음엔 검정콩 차례인거 같은데~~

해서 울집 마당이 온갖 콩찌끄러기로 가득찼다!!!

이러다가 울집 콩 많이 한다고 엉뚱한 소문날라~ ㅠㅠ

 

따뜻한 나라에서 살다 온 사람이라 그런가...

온통 얼굴을 보자기로 감싸고 모자를 쓰고 다닌다.

우리네야 이정도  날씨는 푹하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춥겠지...

 

이런저런 가을 들일에 치여서 감따는 것을 놓쳐버렸다.

몇번 서리내리고 눈 내리고 춥고 하더니만

감이 홀라당 익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딸 수가 없다.

흔들 수도 없고 천상 나무위에 올라가서 하나하나 따야 한다는 소리인데...

누가 나무를 탈꼬... 걱정이다.

대봉시라 크고 단 홍시인데...

하나 먹으면 배가 불러 두개는 도저히 못 먹는 넘인데...

따지를 못해 못 먹는다. ㅠㅠ

 

천상~ 땡땡 날이 추워 감이 얼었을때 흔들어 딸 수밖엔 없단다.

옛날엔 그랬단다.

 

달이 밝다.

외등불빛보다 더 밝다. 보름인가.

달이 밝으면 별이 자취를 감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