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감낭구 짜들기~

산골통신 2007. 12. 4. 11:46
이른 아침...
할매 쫓아오셨다.

"오늘 아무래도 감 따야되겠다. 저거 저거 축축 늘어져서 다 떨어진다."
"안 그케도 오늘 작정하고 딸라고 했슈~ 갑시다~"

요며칠 오늘 아침 날씨가 가장 쌀쌀하더라. 오늘은 설마 감이 얼었겠지.
아니 얼지는 않더라도 좀 딱딱해졌겟지.

비닐하우스 만드는 철골로 만든 긴 감쪽대 하나와
각목으로 만든 감쪽대 두 개를 들고
양철 사다리를 옆구리에 꿰차고
구루마 끌고 올라갔다.
할매는 터진 감 주서담을 양재기 몇개 들고 가시고~

예전같으면 날렵하신 할매가 나무에 올라가셨을터인데
올해는 아예 올라가실 생각도 안 하시고
선녀보고 감 따라고 성화만 대신다.
역시 할매도 세월따라 몸도 예전같지 않으심을 느끼신건가.

풀섶으로 도랑으로 비탈길로 종횡무진 댕겨야 하기땜에
무르팍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도깨비풀씨를 비롯하야~ 아무 풀씨도 안 들러붙는 나이롱 옷을 뒤집어쓰고

아직 아침해가 안 올라왔다.
저 산아래 물건너 마을에서 보자면 해가 보이겠지만
뒷산이 가로막고 있어 이 마을은 아침이 항상 늦다.

해 올라오기 전에 퍼뜩 따자~
지금 조금 설 얼어있어서 따기 좋다.
해 올라오면 다 축축 늘어져 손도 못 댄다.

감쪽대가 부실해 어제 낮에는 봉당에 퍼질러 앉아
긴 양파자루 하나 꺼내 대강 바늘로 주섬주섬 꿰맸다.
너무 길어 중간을 잡아매야했다.
그동안 헌 옷 소매 하나 뚝 띠어서 꿰매 썼었는데
몇년 쓰니 천조각이라 이리 찢어지고 저리 찢어지고 여엉 못 쓰게 되었다.

전에 도시인간들이 다니러와서 감을 따는데 말이지...
따면 말이지~ 우리것도 따주고 가야 하지 말이지~
왜 지들것만 따갖고 휑~ 하니 사라지냐 말이지~
지들 생각엔 우리것 남겨주고 가는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말이지~
남은 우리들은 감 딸 새도 없다는 말이지~
그래놓고 감이 왜 이케 맛있냐고 그러지나 말아야지 말이지~
눈으로 번히 보면서도 못 따먹는 이 신세를... 니들은 아느냐 말이지~

해서 작심하고 오늘은 암일도 시작 안 하고 아침일찍부터 서둘렀다.

할매는 밭둑 밑에 천막을 펴놓고 감 떨어지는 넘들 주서담고 계시고
선녀는 감쪽대로 하나 하나 땄다.
살짝 얼긴 얼었다. 그래서 뚝뚝 떨어져도 퍽퍽 터지진 않더라.
홍시가 될대로 되어서 만지면 물컹~ 세게 잡지도 못하고 살살 애기다루듯해야했다.

참 희한하지~
감이 다 익기전 단단한 감을 따서 놔두면 시나브로 홍시가 되는데...
그 홍시는 껍질이 참 얇아서 입안에 넣으면 씹히지도 않고 살살 녹드라구~

헌데 나무위에 달린 홍시는 익을대로 익어서 만지지도 못하는데
먼넘의 홍시 껍질이 이리 두꺼우냐~ 나무껍질 같애.
할매왈: 갸들도 나름 보호를 하려는건가보다.

한참을 사다리타고 올라서서
하나하나 감을 따다가 지쳐~ 팔도 아프고 고개도 아프고~
나무위에 올라가자니 내 몸무게가 양심에 걸리더라~

해서 눈 딱 감고 감낭구 가지를 막 짜들었다.
막 떨어진다. 이리 퍽~ 저리 퍽~
요란하게도 떨어진다.
하나도 성하게 떨어지는 넘이 없다.
그래도 할매는 아깝다 말씀 안 하시고 하나하나 양재기에 담으신다.

이거 감식초 담으면 끝내준다더라~
이거 냉동실에 넣었다가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달다더라~

전에는 홍시 떨어져 터지면 이거 닭 갖다줘라~~
이러셨는데...
이젠 닭들도 찬밥신세 되어버렸다.
아마도 갸들이 하도 말을 일궈서 그런걸꺼야.

좀이라도 성한 건 박스에 담고
살짝 갈라지고 터진건 들통에 담고
퍽퍽 터진건 양재기에 담고...

감낭구 하나~ 둘~ 셋~ 하이고 이기 몇나무냐...
감을 몇차례 따서 얼마 안 남아서 그렇지
이 나무 그득 달려있을때 딴다치면 모가지 감당 안 되겠네~

마지막 두 나무 남겨두었을때
할매왈: 내는 이제 필요없지~ 나는 내려갈란다...

허거걱?? 할매요... 내혼자 따라고요~~
확실히 할매 작년하고 틀리시네...
냅둬라~ 내가 딸란다 니는 못한다 저리 비켜라~ 이러시던 분이...

구루마에 감을 그득그득 싣고 내려왔다.
창고겸 쓰는 아랫채 방에 감을 하나하나 다듬어서 넣어두었다.
감은 겹쳐넣으면 안 된다.
아무리 추워도 물이 줄줄 흘러내리더라고~

할매는 감을 대접에 두 그릇 그득 담아
산골할매들 모여 화투치는 회관으로 쓰는 오두막으로 가져가셨다.
거기 붙박이로 지키고 불때며 사시는 할매 하나 계신데~
감을 보시자 당신 몫으로 가져간 것은 뒤로 슬쩍 감추고
여럿이 먹자하고 갖고온 감대접을 내놓고 같이 드시더라네...

밭흙위로 떨어진 넘은 살짝 터지면서 흙이 묻고
풀섶에 떨어진 넘은 살짝 금만 갈듯말듯~ 성하고
비탈 풀섶에 떨어진 넘은 멀쩡했다.
헌데 밭둑 밑 길 위로 떨어진 넘들은 영락없이 다 터졌다.
아주 신나게 터졌다. 아무리 천막깔고 어쩌고 해도~

도랑으로 떨어진 넘들은 구제할 수가 없이 터져버려
손구락으로 슬슬 긁어 닭집에 던져주었다.

까치밥 하나 남겨둘까 말까 재다가 싹 다 따버렸다.
머 실은 다 따려고 그런거이 아니라~ 마구 짜드니 하나도 안 남더라 머...ㅠㅠ

요즘 까치들~ 먹을 거 많더라~~~
이 골짝에 과수원이 많아서..

하여간 오늘 감낭구 신나게 짜들었다.
속이 다 션하다.
오는 길에 뒤돌아 감낭구를 바라보니...
이제 겨울이구나... 실감이 나더라...

감을 다 따고 내려올 무렵~ 해가 산위로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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