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농사일이 힘든거야... 그런거야...

산골통신 2007. 10. 29. 00:43
망연자실...
이란 심정을 처음 겪었다.

머 태풍이나 홍수나 산사태 등등 그런 대규모 물난리를 겪은 사람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마는...
그래도 살던 중 가장 기맥히고 황당한 경우를 당해서 요즘 며칠째 멍한 상태.

미나락을 수확은 했겠다.
말려야 했다.
넘들은 새로 생긴 벼 말리는 기계에다가 갖다 넣고 한번 말리는데 십오만냥씩을 주고
말린단다. 그러면 아주 간편하다네...

그런걸 눈도 안 깜짝거리고 건조기에 말린건 밥맛도 안 좋고 영양도 안 좋고 그래 머!
다들 편한거 좋아들하는데... 사람 먹는거 갖고 그리하면 안 되잖아...

머 이러면서 햇살에 말리겠다고 길에 갖다 널었겠다...
하루 반 말렸나. 하루 전에도 안 온다던... 비가 느닷없이 퍼부었다.
황급히 뛰쳐나가 거둬들여 비닐로 덮었다.
망할노무 일기예보 내 믿나봐라...
그리 말짱하고 청명한 가을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이 뒤덮혀 쏟아질줄 뉘 알았나...
그 전날 달도 밝고 그랬는데...

그러나 저러나 어쨌든 나락은 비에 젖었고... 밤이슬에도 젖었고...
다음날 다시 햇살이 나오니 감사하다... 생각하고 다시 펴널었다.

그동안에도 넘들 나락말리는 기계는 차라락 차라락거리며 잘만 돌아가고 있었지.

겨우겨우 우리도 차라락 차라락 소리나게 말렸더랬다.
오늘 낮에 다 떨어 푸대에 담아 들어가면 되겠거니...
신이 났겠다. 점심을 먹고 일찌감치 서둘러 논으로 내려갔겠다.
일손도 이번엔 넉넉하고... 큰넘 학교에서 집에 가는 주간이라 잠깐 돌아와 있었고
나무꾼도 일이 덜 바빠 집에 있었고 해서
올해는 참 편하게 일하겠구나... 싶어서 참 기분도 좋았더랬지.

아... 이 뭘까... 이 심정은...
표정관리도 안 되고... 그냥 멍청하니 서있었다.

자알 말라... 있어야 할 나락들이 죄다... 물속에 있었다.
무슨 일?
할매는 그냥 할말을 잃고... 나락들만 만져보고 계셨고
나무꾼은 누가 그랬냐며 육두문자를 시작하려 했다.

나락을 말리는 길 옆 논 물꼬를 누가 열어놓았던 거였지.
짚 걷으려고 전날 온 빗물을 빼려고...
물꼬를 열면... 그 물이 어디로 흘러내려가는 지를 확인하는 것이 기본 상식 아니었을까...
우리는 그리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난 몰랐다. 이러고만 있네 그랴...

논 쥔장 나오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지.
논 쥔장은 내도 모른다. 짚이 필요없어 이웃보고 거둬가라고 한 죄?밖엔...
문제의 이웃은 물꼬가 그리로 열려있는 줄은 몰랐다... 라고만 하고...

뉘를 탓해야 하나...
논 쥔장도 날벼락이요~ 그 짚 얻어가려던 이웃도 날벼락이요...
겨우 말린 나락 도로 다 적신 우리도 날벼락을 만난 것이었지.

이 꼴을 본 다른 이웃들은 눈깔을 어데 두고 물꼬를 열었느냐고...
한마디씩 하지만...
이제 소용없는 일... 부질 없는 일...

서둘러 다 젖은 나락들을 거둬 다시 말려야했다.
어디서 말릴까... 땅은 이미 다 젖었고...

문제의 이웃이 미안했던지... 자기네 멍석을 죄다 가져다 공갈다리께에 펴놓았다며
거기다 널으라네...
누가 널줄 몰라 이러는가...
이 많은 나락을 어떻게 날라야 할지...
일일이 퍼담아야 하는데...
큰넘도 꼭지가 돈다며 흥분을 하고...
나무꾼도 할말은 해야 한다고 그러고...
왜 안 그러겠는가... 아침내내 비맞은 나락 건져 말리느라 죽을 애를 먹었는데...
다시 또 젖었으니...

그래도 할매랑 선녀랑 말리느라 애먹었다.

그래봐야 남사스럽다. 넘들은 다 건조기에 말리는데 우리만 햇살에 말린다고
이 난리를 떨었으니...
암말 하지 마라... 우리 속만 상하지 아무 소용없다.

입 꾹 다물고 나락을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큰넘 고생 꽤나 했다. 모처럼 집에 와서 편히 있지도 못하고 죽자고 일만 했으니...
다신 집에 안 오겠다고 그러지 않을까 몰라...

퍼담고 나르고 다시 펴서 널고...
저녁늦게까지 했다.

그러고 다음날 하늘이 우리가 불쌍했던지 날이 참 좋대...
하지만 그 다음날 비가 온다하대...
믿지못할 일기예보지만 계속해서 들어가며...
나락을 펴널었다.
단 하루만 날이 맑아주소... 더는 안 바랄께..
그 다음엔 비가 오던 태풍이 불던~ 내 말 안 할께... 빌었다.
나무꾼도 어지간히 속이 탔던지 꿈까지 꿨단다.

작은넘 중학교 부모면접날이었다.
부모가 다 가야한단다.
내일 비가 온다는데... 오늘 나락 다 거둬야하는데... 가긴 어딜 가..
나무꾼만 갔다오소... 어머니가 안 왔다고 불합격된다면 걔 팔자요...
내혼자 큰넘이랑 꼬맹이랑 같이 나락 다 거둬 곳간에 쟁일테니까~
암걱정말고 혼자 갔다오소... 했다.

날은 참 좋았다. 설마 내일 비가 오랴...
온다하더라도 오후에 오겠지.
131 일기예보를 휴대폰으로 계속 연결해 들으면서...
면접엘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출발해야 할 시간 바로 전까지 결정을 못했다.

에라...
할 수 없다. 자식이 먼지...
큰넘보고 부탁을 했다. 너만 믿는다.
할매하고 동생하고... 셋이서 나락을 책임져라...
할매가 시키는대로 다 해라...
부모없는 집에선 니가 대장이다. 신신당부하고..
지리산으로 날랐다. 눈 딱 감고!!!



오늘...
아침엔 참말이지 날이 맑더라... 비가 오긴 뭐가 와...
또 일기예보가 우릴 놀렸지.
그러면서 나락을 다시 펴널으면서... 비가 오더라도 오후 늦게 왔으면 좋겠다..
빌었지.

하지만... 펴널고 한시간이나 지났을까..
구름이 낀다. 먹구름도 몰려온다.

에그... 식구들 다 튀어나와서 나락을 떨어 담았다.
큰넘은 차마 발길이 안 떨어지는지...
가방에 메고 나섰다가 다시 돌아서 나락 담는 걸 도와주다가
차를 한번 놓치고 다음 차 타고 학교로 떠났다.
그넘 이번에 고생 많이 했다.

할매랑 나무꾼이랑 면접을 보고 돌아온 작은넘이랑 꼬맹이랑 선녀랑...
정신없이 나락을 떨어담았다.
언제 비가 들이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그런 상황...
날이 반짝 개였다가 흐렸다가 온통 시꺼맸다가~ 다시 맑았다가
요지랄을 떨더라.

하늘아 하늘아... 내 암말도 안 하께.
이 나락만 다 떨거든 비가 오던지 말던지~ 니 맘대로 하세요~~

나락을 다 떨어 푸대에 담고 실어날라 곳간에 다 쟁였다.
어디서 힘이 솟는지 푸대를 번쩍 번쩍 들어날랐다.

멍석이랑 이것저것 다 치우고 쓸고담고 정리를 하고나니...
힘이 쭉 빠진다.

다 했다.
이젠 비가 오던지 말던지 내는 모린다.

왜 사람들이 나락 말리는 건조기를 선호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돈은 들어도... 좀 손해는 나도...
밥맛이 있던가 없던가~ 그건 아무 상관없어...
일손없는 나락거두기... 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

또 우리처럼 날벼락 만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
하늘보고 사는 농사꾼...
천재지변도 만만찮고 인재지변도 막상막하니까.

올해처럼 나락거두는데 힘이 든 적도 없었고...
사건도 많이 터진 적도 없었다.

전에 차나락 말리는데 이웃 축사 물을 틀어놓아... 밤새...
그 물이 우리 나락으로 다 덮쳤던가...
머 그런 일도 있었지.

이젠 허허... 웃을 순 있겠다.
다 끝났으니까.
사실 웃음밖엔 안 나와...
그 문제의 이웃을 봐도 웃으며 인사도 하고... 속은 말이 아니지만~ ㅎㅎ

농사짓는데 이런 별일도 많다네...

요며칠... 너무 힘이 들었는지 잠도 안 오고...
그냥 오늘 날밤까야겠다.

아까 저녁부터 비가 뿌린다. 조금씩... 조금씩...
깜깜한 어둠속... 빗줄기를 느끼며...
아침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