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나락과의 쌈박질...

산골통신 2007. 10. 24. 16:27
콤바인 논에 들어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길 몇날며칠..
이 산골마을 다 베고 맨 마지막에 베줄라나...
텅텅 비어가는 논들을 바라보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목욜날 비온다카던데~ 일욜에 비온다카던데...
나락은 언제 말릴란고...
지네들은 날 좋은날 말릴라고 부지런을 떠는데...
나락말릴 자리도 지네들이 다 차지하고...

에라~ 맘을 비우자...
좋은날 돌아오겠지.

나락을 비어주기로 한날...
나락말릴 자리를 돌아보러 갔는데... 미리 멍석이랑 망이랑 다 갖다놓았는데
삼거리 혜자네집에서 차지했다.
그러고는 눈도 안 마주치고 외면해버린다.
에혀... 그리 욕심떨어 뭐할란고...
반반 나눠서 해도 좋을껄...
그래 니들 다 해라... 우린 나중 하지 머~
비 그치고 난 뒤 해도 늦지 않아...

너들은 일손도 넉넉하면서... 장정힘 맘대로 쓰면서...
허리꼬부라진 할매랑 얼치기 선녀랑 일하는거 보면서도 그리 새치기를 하면 맘좋니...
명색이 남자꺼풀을 썼으면서...

이웃집 노인네만 둘 사는 집에선 좁디좁은 마당과 대문간에서 억지로 말리고 있는데
니들은 길바닥 다 차지하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자리까지 차지하니...
복 받을꺼다... 암만...

에혀~ 속으로 그러거나 말거나... 귀먹은 욕만 한바가지 퍼부어주고 돌아섰다.

오늘... 콤바인 온다던 날자 사흘이나 지나서야... 왔다.
그것도 다 늦은 저녁 깜깜 땅거미가 내릴 무렵...

그래도 어쩌냐... 왔으니 고마워해야겠지.
부랴부랴 할매는 참거리 준비하러 들어가시고
선녀는 논으로 뛰었다.
논 가장자리에 베어놓은 갓돌림 한 나락단을 논 입시에 가져다 날라놓아야 하거든.
그래야 콤바인이 다시 논을 한 바퀴 안 돌아도 되거든.
콤바인이 이 질퍽질퍽한 논을 다시 한바퀴 돌게 되면 베어넘긴 짚단을 다 깔아뭉개서
엉망으로 맹글어놓는다고... 일거리를 맹근당께~~

콤바인이 논을 한차례 돈 다음 논으로 들어섰다.
주욱~ 한 바퀴 돌면서 베어놓은 나락단을 영차 짊어지고 논밖으로 날랐다.
에고.... 발은 푹푹 빠져요... 안 빠지면 찍찍 미끄러워요...
휘청휘청~ 울 꼬맹이 몸무게쯤은 될법한 나락단을 이고지고 나른다.
헉헉... 눈앞이 안 보인다. 깜깜하다.
어림짐작으로 걷는다.
콤바인 불빛이 눈부셔서 잠깐 눈을 가리고 섰다가 움직인다.
그 다음은 또 반사작용으로 깜깜해져서 한참을 서있다가 또 나른다.
어림짐작으로 다 날랐는데 안 빠져묵었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논둑으로 나르는데... 무심포 콤바인불빛에 내 몸을 비춰보니~ 크하하하하하...
고슴도치 됐네...
도꼬마리씨앗이랑 도깨비풀씨랑... 이런저런 풀씨들이 온몸에 붙어..
에그 이 옷 입고 오는 것이 아닌데.. 날 추워서 하나 더 껴입었더마는...
고슴도치가 행님!!!! 하겠네그랴...

바람불어 날은 춥고... 밤이슬은 내리고
논 하나 다 비고... 둘 비고... 셋 비고... 등등등등...
나락을 웃논 빈들에 멍석을 깔고 다 부어달라고 했다.
말리기가 거기가 넓고 좋으니까.
나락산이 두개나 만들어졌다. 오메...

우리 논 다 비고 그 콤바인은 또다른 논 비러 갔단다... 그 저녁에... 대단하다.
내는 절대 콤바인 안 살꺼다. 그 일 절대 몬한다.

언넝 퍼뜩 일 끝내고 들어가서 저녁먹으려고 서둘렀다.
거대한 나락산을 멍석으로 이고지고 덮어놓고 돌로 눌러놓고 몰라라~~ 하고 집으로 튀었다.

씻을 힘도 없고... 밥 먹을 기운도 없고...

아침에.....
안개가 자욱하다.
우리집밖엔 안 보이드라.
온 세상이 축축하드라.

해가 나야 나락을 널던 말던...
해올라오기 기다리다가 늦게서야 나갔다.

멍석에 물이 흥건... 밤새 이슬이 내려...

나락을 푸대에 일일이 담는다.
담은 나락푸대를 구루마에 싣고 멍석으로 나른다.
일일이 펴넌다.
평지가 아닌 비탈길이라... 에고... 올라갈적엔 막 힘이 딸린다.

길에도 널고 논바닥에도 널고 저 아래 길에도 널고..
온바닥에 다 나락을 널었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안 비켜주던 이웃은 다 말렸는지 암소리도 안 하더라.
에그.. 그래... 됐다 마.
내일 비나 안 오면 욕 그만하마!!!
내 일복 많은 팔자지 뉘를 탓하겠노.

널다가 널다가 다 못 널은 나락 아홉푸대는
기어이 집으로 싣고 왔다.
쌕쌕이가 있으니까 참 편킨하네...
트럭은 구찮더라고... 싣기도 힘들고 짐칸이 높아서.
에스에스기 쌕쌕이는 크기가 용달만해서 아주 장난감같이 만만하다.
사륜조항이라 바퀴도 요리조리 좁은데서 돌리기도 좋고..

나중에 나무꾼이랑 큰넘이랑 오걸랑 나락떨어서 마지막 담아 곳간에 쳐쟁일때나 쓸꺼나...
한꺼번에 나락 수십푸대를 실어야 하니까.

대충 일하고 들어와서 점심이나 먹고 다시 나가야지~~ 하고 시계를 보니
허걱! 두시가 넘었다.
소들이 욕하겠네...
강냉이는 지 밥그릇 들고양이한테 다 뺏기고 툇마루밑에 숨어있드라.

맥주 시원한 넘 꺼내서 나발불고... 다시 나갔다.
마저 하고 들어와서 맘놓고 쉬어야지.

그럭저럭 다 널었다. 오늘 내일 모레... 비만 안 오고 날만 좋다면...
만고 땡인데...
하늘아... 조금만 참아줄래...

이제는 뻗어도 되겠지...
주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