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갓돌림

산골통신 2006. 10. 25. 14:33

아침에 후닥닥 논으로 뛰쳐나가야 했다.

콤바인이 오후에 논에 들어올 수 있다고...

 

"아이고~ 주말에 비 온다카던데에~

언제 나락 말리냐고오~ 다음주에 하시더~~~ 예?"

 

그래도 할매하고 콤바인 쥔장 맘대로라... 우짤 수 있나 말씨...

털털거리면서 논으로 내려갔다.

지난 주말에 비가 와서 논이 질퍽일거 같아서 긴장화를 신고갔다.

 

아니나달러~ 할매는 논도랑으로 물이 안 빠진다고 물길을 내고 계셨고

도랑 막힌곳 뚫고 계셨다.

논일은 머 이런일이 좀 골치가 아푸지.

논을 자알 말려놓아도 비가 오면 말짱 파이고...

그래도 한짝만 물이 들어와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할매는 이짝~

선녀는 저짝~

 

낫들고 한짝씩 맡아 좌악 베나가기 시작했다.

이젠 낫질에도 이력이 붙어 벼포기 서너개 대여섯개는 한번에 쥐고 베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머 그것도 요령이더라고...

 

네 귀퉁이는 콤바인 들어가고 돌릴 수 있게 많이 베어내야 했고

나머지는 한줄씩 베어내면 되었다.

 

큰베미 끝내고 작은베미 끝베미 논으로 차례차례 해나갔다.

햇살이 따갑다.

수건도 안쓰고 모자도 안 쓰고 나와서 눈도 따갑고 벼포기 잎이 자꾸 얼굴을 찔러

눈을 못 뜨겠다.

날이 좋아 제법 땀도 흐르고

한참 낫질하다가 더워 웃옷을 벗어버렸더이 팔에 닿는 까칠까칠 벼포기들... 으으..

도로 주워입어야했다. 에구~ 차라리 더운거이 낫지.

 

여기저기 메뚜기들이 뛴다.

대낮엔 메뚜기 잡기 힘들다.

동작이 꿈떠질 해거름에 잡아야 잘 잡힌다.

 

두놈이 붙어있는 놈들이 많다. 잡아서 떼어놓아봤더이

고새 도로 붙어버린다. 고놈들...

 

가을 논둑이 볼만하다.

세갱이풀이 결국 억새꽃을 피웠다.

그렇게 잡으려 애를 썼어도 인간보다 생명력이 한 수 위인  풀을 어찌 이기랴...

딴 논둑엔 없는 억새꽃이 울논둑에만 만발을 했다.

차마 이쁘다고 봐줄 수가 없겠드라...

 

그동안 날이 가물어 논바닥은 짝짝 갈라져있는데

그 바닥에도 자잘한 풀들이 자라올라오고 있드라.

어린 벼잎도 자라올라오고... 이제 곧 날 추워질텐데... 다 얼어죽을낀데...

 

추수를 마친 논마다 파랗다. 그 싹들때문에.

마치 씨앗을 뿌려놓은 것 처럼...

 

콤바인 소리가 마을 뒤쪽에서 난다.

저쪽 끝내고 내려올래나...

어여 부지런히 해야겠구나...

시간에 쫓겨 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오전 나절에 다 못하고 밥묵고 하자고 집으로 왔다.

이 일도 하다보면 참 힘들다고오...

콤바인도 밥묵고 하겄지비~

 

잠시 쉬고 거의 4시까정 했나?

콤바인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이만~

마을 밖으로 나가버린다. 으미??? 머꼬????

 

저 너머에 있는 논부터 마저 하고 온단다.

흐응...

그럼 오늘 밤에 불켜놓고 하지는 않을끼고

천상 내일 해주꾸마...

잘되얐네~  일 서둘러 하는건 적성에 안 맞는데...

 

벼농사가 그런대로 잘 되었단다.

모내기 끝나고 풀을 못 잡아 논꼬라지가 우스웠더랬는데...

온 여름내 피사리하느라 허리 분질러질뻔 했는데...

이웃 논 나락보다 더 좋다고 그런단다. 휴우... 안도의 한숨!!!

 

비가 한달 여 퍼붓다가 석달열흘 가물어버리는 바람에

밭작물은 어떤지 몰라도 나락엔 병충해없이 좋았다나...

 

올해는 깜부기도 없고 쭉정이도 없고 잎도 푸르고...

작황이 좋다한다.

농사 망쳤을까봐 봄에 맘 졸이던 것 생각하면 참말로...

 

논 삶을때 잘 못 삶아 논바닥이 고르지않아 논물 댈 때 군데군데 모들이 잠겨

물 속에서 다 삭아버리질 않나~ 그래서 급히 모머들기를  두고두고 몇번이고 해야 했었다.

나중엔 하다하다 지쳐서 에라~~ 덜 묵고 말지~ 하고 집어쳤다나~ ㅎㅎㅎ

 

내년엔 논을 잘 삶아달라고 신신당부해야지...

깔끼 가지고 울퉁불퉁 군데군데 섬이 생긴 논

써래질 하는거 참 힘들더라고오...

안 해도 되게끔 해달라고 청을 넣어야지.

내돈 주고 일 부탁하는데 왜 우리가 이렇게 저자세로 굽신거려야 하는지 내도 몰겠당~ 끙...

 

논도랑에 돌미나리가 한창이다.

요새 뜯어서 적 꾸먹으면 참 좋겠는데...

 

주말에 비 소식이 있다한다.

한번 오니 자꾸 올라카네...

가을비는 별로 안 반가운데...

 

무 배추 생각하면 비가 와야겠고~

나락 말리고 짚 걷을  생각하면 비가 오문 안 되겠고~ ㅋㅋㅋ

 

결국 콤바인은 해가 다 저물도록 안 나타났고

논 갓돌림은 끝났다.

 

아무리해도 주말에 비가 오면 나락 말릴 걱정에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할매... 결국엔 비 그친다음에 논 말려서  베자 하신다.

 

그려요~ 그려요~ 일 서둘러 하면 탈나요~

나락푸대 그거 누가 날를꺼요~

선녀 혼자 몬해요~~

나락도 한 며칠 잘 말라야 하는데...

잘 되얐어요~ 잘 생각하셨어요~ ㅎㅎㅎ

박수를 쳤다.

 

마을 들녘은 거진 비어갔다. 울 논하고 몇몇 논만 남고

다 베어넘긴 볏짚은 비가 온 덕분에 걷지 못 하고 논바닥에 누워있다.

 

부지런한 일손이 많은 집 논은 벌써 여기저기 짚가리를 쌓아놓았다.

그렇게 짚이 잠을 푸욱 잔 다음 실어가려고...

 

우리는 천천이 해야지.

일손없으니께...

슬슬~ 몸 알아서 하늘 사정 봐가면서 해야지.

그것이 신간 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