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가을 들녘에 서서...

산골통신 2006. 9. 13. 20:57
가을 들녘에 서면...
꼭 할미꽃이 생각난다. 하얀 머리칼을 드리운...
봄이 아님에도...

이제 곧 다 스러질~ 운명의 풀들과 잎들...
그것들 때문일까.

하얀 이슬이 잎새마다 젖어있다.
긴 장화를 신고 다니지 않으면 바짓가랑이 다 젖는다.
긴 팔옷 입지 않으면 팔이 금새 젖어 춥다.
수건을 두르지 않으면 머리칼이 나뭇잎에 스쳐 머리칼이 다 젖어버린다.

이젠 식전일을 안 한다.
햇살이 올라와 밤새 내린 이슬이 다 마른 다음에야 슬슬 낫을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식전일 아주 안 하는 건 아니지.

들깨 찔 때와 메밀 거둘 때는 이슬이 덜 말랐을때가 낫질하기 더 좋으니까 식전에 해야하지.
왜냐구? 들깨알이랑 메밀씨앗들이 촉촉히 아침이슬에 젖어있다가
햇살에 마르면 톡톡~ 토도독~ 다 튕겨나가버리거든...
요놈들은 식전에 축축히 젖어 축~ 늘어져있을때 거둬야 해.
이런 농사일 요령도 알아야 하더라구.

무 배추들이 제법 잘 자라올라온다.
가물까봐 물도 들이대고 줘가며 모종을 키웠었는데... 잘 되었다.

할매가 땅콩을 뽑으셨다.
두 골 뿐이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그기 아닐쎄~
꽤 많네... 수레로 서너 번 날라야 할 양이더라구.

밭고랑엔 경운기가 못 들어가고 그렇다고 지게질 할 수도 없고 허리 휘거든!
천상 외발수레가 제격이야.
좁아터진 밭고랑에서 뭐 싣고 나르기엔.

땅콩알들이 자잘하다. 그래도 쭉정이가 별로 없는 것이 그런대로 봐줄만 하다.
올해는 너구리가 안 디빘나봐.
수레에 척척 얹어 싣고 헛간마당으로 나른다.
할매가 천막을 펴놓으셨다.

할매는 앉아서 땅콩을 훑어 따시고
선녀는 땅콩줄거리를 실어 나른다.

이제 할매는 힘쓰는 일을 못 하신다.
맘은 힘이 뻗치시나 몸이 말을 안 들으신단다.
벌써 일흔 하고도... 여섯을 바라보는 연세에...
이젠 농사일 그만 두셔야 할텐데...
땅을 놀릴 수 없다는 그 농사꾼의 맘으로 단 한 평의 땅도 허투루 냅두지 않으시고
뭐라도 심어놓으셨다.
해서 가을... 이 가을에~ 쉬지도 못 하고 이런저런거 거두느라 힘드시지.

땅콩을 다 나르고
내친김에 소먹이용으로 쓸 풀들을 실어 나른다.
옥수수도 마저 베어서 나르고
아우... 저 풀들... 가벼이 볼 넘들이 아니다. 무게가 장난이 아냐.
수레가 휘청 자빠진다.
몸도 따라서 자빠진다.

좁다란 밭둑에 난 길로 끌고 오니 머리 위에 감나무 감이 뒤통수를 따당~ 내리친다.
에고~ 아파라...
감나무 가지를 째려보지만 저거 저거~ 감이 저케 달려있는데 뿔개버릴 수도 없고...
딴디로 옮겨심을 수도 없고~   에잉... 
머리를 숙이고 댕기느라 애묵는다.

한참 땀흘려 풀수레를 나르고 나니 힘이 빠진다.
털석 거름터미 옆에 주저앉는다.
좀 숨을 돌리고...
땅콩을 훑는다. 알을 일일이 따내야 한다구...

다 훑은 땅콩 줄거리는 소한테 갖다준다.
이노무 소가 냄새를 맡고 킁킁거리며 쇳바닥을 내미는데...
땅콩줄기는 잎만 날름 따먹고 줄거리는 지들 발밑으로 내동댕이 쳐버린다.
이눔들아~~ 그케 먹을거면 냅둬라~ 안 준다~ 니들 배가 부르시구만???

꼬맹이가 쪼차와 풀을 막 갖다준다.
소들도 이 꼬맹이가 시퍼보이는가보다. 지들도 보는 눈이 있는지
막 풀 달라고 고갯짓을 해댄다.

이제 풀들이 기세를 꺽었다.
열심히 씨를 맺는다.
잎이 진다.
온 들녘이 푸른 빛을 잃어가고 누런... 가을색을 찾아간다.
벼들도 누레진다.
올벼들이 먼저 누레지고... 차나락들이 먼저 누레진다.
올해는 한달여 비가 퍼부어 병충해가 겁이 났었으나~
장마 뒤를 이어 땡볕이 한달여 넘게 내리쬐여서 그랬는지.
병들이 다 걷혔다고 한다.
고추병도 그랬다 하고...
비덕분에 피해를 본 것은 참깨정도...
올해 참깨값이 한 말에 삼십만냥을 웃돈단다.
마을에서야 그리 높게 받을 수 없어 한말에 이십만냥이라 하더라구...
그래도 서로 사가려고 아우성을 쳤다나...

우리도 참깨농사를 망쳐서 이웃에 사려고 말을 넣어놓았었는데..
또다른 이웃이 떼구쟁이를 써서 새치기를 해버렸다나...
허허... 웃을 수밖에...
이웃지간에 싸울 수도 없고... 걍 뒤돌아서서 웃어버렸다.

다들 중국산을 말한다. 농사꾼들도 중국산을 말한다.
한국산이라 해서 농약을 덜 치느냐? 그건 또 아니란다.
신토불이라고?  그것도 웃기는 말이란다.
서서히 생각들이 이렇게 굳어져가드라.
농사짓는 농사꾼들의 생각조차 이리 변해가는데...
이 변해가는 마음을  어찌 붙들어야 할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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