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철따라 나는 향내...

산골통신 2006. 9. 11. 23:51
이 가을엔 그저 맘을 잘 붙들어놔야 한다.
언제 어디로 튀어 나갈지 모르니까.

아침에 땅콩을 뽑으러 가자~ 했었다.
이슬 마르걸랑 뽑아야 해.
올해는 땅콩골 두 골 밖엔 안 해서 일 치긴 쉽네.
올해는 너구리가 안 댕겨갔나봐... 산속에 묵을기 좀 넉넉했었나보네?

땅콩줄기를 쑤욱~ 뽑을 때 나는 땅콩향내가 참 좋다. 참 특이한...
술안주로 나오는 땅콩들에선 이런 향내가 안 나던데.
킁킁~ 코를 들이대고 맡아본다.
그러면 또 잘 안 맡아진다. 왜냐고?
향내란~ 은근슬쩍~ 지나치면서 오며가며 맡는 거이 제대로 된 향내걸랑.

들깨밭을 지나갈 때면 흐음...
참 좋다. 이걸 뭐라 표현하지? 들깨향...
들깨를 털 때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았던 그 향을...
한번 더 맡고 싶어 오던 길 다시 되돌아 가기도 한다.

메밀밭에는 머 기억날 만한 향이 별루 없다.
그저 꽃만 열심히 볼 뿐...

콩밭에도 고구마밭에도 논에도 도라지밭에도...

산엘 올라가본다.
산국이 키를 키우고 있다. 꽃이 곧 필꺼야.
산도랑가에 분홍 하양 고마리...  꽃분홍 물봉선 노란 애기똥풀
여전히 피어있고...
감나무에 감들이 벌레먹었나... 조금 발그스레... 눈에 띄는 넘 있다.

온 가으내 예취기에 시달린 억새가 서둘러 씨를 맺는다.
바랭이도 급하게 씨를 맺었는지 축축 늘어져있다.
방동사니도 독새풀도...
씨 안 맺은 넘들이 없다.
발에 척척 걸린다.

저 수십 수백 수천~ 아니...  아니... 수천억 개에 달할...
씨앗들이 한꺼번에 땅에 떨어져...
내년 일 년 내내... 차례차례... 싹을 트우겠지?
요시랑방정 인간들이 아무리 지랄을 떨어대도... 지들 할 일 알아서 하겠지.

길따라 걸으면 풀냄새가 난다.
밭둑을 따라 걸으면 맛있는 냄새가 난다.
논둑을 따라 걸으면  비릿한 냇가 물이끼 냄새도 아니고...
산에 오르면 이도 저도 다 합친... 그런 시원한 냄새가 난다.

봄하고 여름하고는 또 다른 냄새.
철따라 산에 올라야만 맡을 수 있는...
잠깐 그 철을 놓치면 절대 맡을 수 없는...

겨울이 닥치기 전에 부지런히 산엘 가봐야지.
온통 산으로 둘러쌓인 이 산골 작은 마을에서
저 앞 새로 생긴 다리만 건너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음에도...
일부러 안 나가고 있다.

이 산골에서 나는 향내가 자꾸만 자꾸만..........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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