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흐느적 흐느적~

산골통신 2006. 1. 12. 21:04

해마다 이맘때면~

날이 억수로 추워서 내내 구들장 지던가~

때로 날이 좀 풀려서 몸도 따라 풀려서 흐느적거리던가...

둘중 하나다.

 

오늘 밤부터 비가 온다카면서 날이 확~~ 풀어졌다.

하늘을 보아하니 그럴 것 같드라~

그래서 이런저런 비설거지 좀 해놓고

찹쌀 방아도 좀 찧어놓고...

 

하느작~~~ 거리면서 돌아댕겼다.

날이 이리 푹해지면 도무지 집구석엔 못 붙어있는기라...

천상 농사꾼체질인가~ 아니면 산골체질인가...

들이던 산이던 돌아댕기고 봐야하니...

 

할배가 이젠 바깥출입을 영 못 하신다.

해서 답답한 상방에서 마루로 탁 트인 사랑방으로 옮기셨다.

방문만 열면 마당이 그대로 보이게끔...

 

가끔 바깥 공기라도 쐬게끔~

휠체어를 타시다가 

비탈길이 많은 이 산골짝에선 위험해서 전동스쿠터를 장만해드렸으나

이젠 그나마도 못 타신다.

그래서 하루종일 마루에서 사신다.

 

근데 할배요~~ 저 책들 좀 어케 좀 해봐봐여~~

이젠 안 보시잖어유~

시내 문화원에서도 몇번씩이고 와서 죄다~ 뒤적거려갔으니

더이상 가치있는 책들은 없을낀데요~ 걍 고마~ 벽장에 넣어버립시다요...

 

할배는 선녀보다 책이 더 많다.

방을 빙 둘러~ 다 책이다.

벽장에 그득하던 책들은 그나마 할매가 정리? 차원에서 아궁이행...

선녀가 야곰야곰~ 볼만한 책들은 집어나르고~~

그래도 많다.

옛날 소학교 교과서도 있고~

케케묵은 고리짝 동동구리무 선전이 나오는 잡지도 있다.

할배네 자식들 학교댕길적 교과서도 있고

신여성이 나오는 책도 있고 쪽바리말로 된 책도 있다.

이젠 색깔들이 싯누래져서 어떤건 시커멓기도 하다.

만지면 조각조각 떨어져나가는 책들도 있어서 만지기도 겁난다.

 

중요한 책들은 이따만한 자물통을 해달아서 감춰두셨다.

거기에 머가 있는지 보고싶었으나 안 보여주신다.

족보가 있을까? 아님 옛날 임금한테서 하사받았다는 첩지가 있을까?

 

하루일과가 책 보시는 것이랑 티비시청과 신문 보시는 것이 다다.

눈도 어두우셔서 손거울보다 더 큰 돋보기를 사용하신다.

귀도 어두우셔서 고래고래 옆에서 기차화통 삶아묵는 소리를 쳐도 잘 못 들으신다.

보청기는 왜 안 하시는지~ 장식용으로만 지니고 계신다~ ㅎㅎㅎ

 

허구헌날 보청기를 안 하신 채 티비를 보시니

티비소리가 왕왕~ 길 가까정 들린다.

그 덕에 그 소음 속에서 같이 생활하시는 할매는 덩달아 귀가 잡수셨다.

고마 이젠 선녀도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하는데 이력이 붙어서

아무렇지도 않다. 할매한테도 보청기를 해드려야겠다.

 

이러다 선녀까정 귀먹으면 어카지?

 

비가 좀 올려나~

너무 가물었어~

눈이라도 좀 왔으면 좋은데~ 딱 두번 그것도 조금 오고 말았으니...

 

저기 여기서 더 들어가는 산골짝엔 마실 물이 딸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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