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이 질어서 도무지 한 발 두 발 떼기가 힘들다.
이 산골마을은 물이 흔하고 흔해서 땅만 파면 물이 나서 도랑을 필히 별도로 파야하는 그런 동네다.
그래서 산꼭데기에도 논이 있고 모를 키워낼 수 있을 정도로 물이 흔하다.
스무가구 집집마다 자가 지하수도 있다.
헌데 물건너 이웃 마을엔 지하수는 커녕 날이 좀 가물면 급수차 신세를 져야 한다나...
고작 해발 350미터 작은 산 아래 마을인데 문제는 이 일대가 병풍처럼 높은 산으로 사방 둘러쳐져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신작로로 등산객을 태운 버스가 줄줄이 다닐 정도로 유명산들도 많단다.
좌우당간 밭에 못 들어가니 일이 없더라고...
두 군데 큰 매실밭 풀 깎는 일이 있는데 그건 날 잡아 장정들이 하기로 하고...
해서 여차여차 날은 맑고 할일은 없고 해서 대청소 시이작!
마당 한 구석 앵글을 좌르르 놓고 이런저런 연장이며 잡동사니들을 두던 곳이 있는데 자꾸만 갖다 놓기만 하고 정리는 안 하니 마치 도깨비 사는 소굴처럼 되었으...
해서 오늘은 작심하고 여기 길을 뚫기로 ㅎㅎㅎ
삽이며 괭이며 갈퀴며 등등 연장등 한짝으로 치우고 예초기 두 대 치우고 시멘트 두 푸대 영차 들어옮기고
짚단 쌓아둔거 이리저리 묶어 소마구로 던져 버리고
빈박스들 차개차개 쌓아서 묶어 내놓고
잡쓰레기들 모아서 쓰레기봉투에 담아 내놓고
등등등 하다보니 한나절 후딱 지나가네...
아쉬람터 공사 감독하던 나무꾼이 밥묵고 합시다 해서리 대충 쌀국수 해묵고 다시 청소 시작!
비온 뒤 끝이라 빗자루질을 해도 먼지가 그닥 안 나네!
싹싹 쓸어냈다.
내일은 집 뒤안 설거지 좀 해야겠네!
거기도 어마무시하게 쌓아놨거든...
시골집은 안 치우면 쓰레기 소굴된다.
뭐 치운다해도 금새 다시 쌓이지만... 그래도 연례행사처럼 치우고 또 치워야 한다.
안 그러면 발 디딜데가 없고 뭐 찾으려면 온집안 다 뒤집어엎어야 하느니...
오늘도 청소한 덕분에 막둥이 구두 찾았으 ㅎㅎㅎ
그게 거기 있을 줄 뉘 알았냐고오...
오며가며 작약 자빠진 애들 끈으로 말목을 박아서 묶어세워주고
길가에 심은 샤스타데이지들 차바퀴에 밟히지 말라고 묶어세워주고...
장대낫 들고 닭집 마당 지챙이 풀 다 쳐내고~
이노무 달구시키들이 다른 풀들은 다 쳐먹는데 지챙이풀은 안 묵어... 오늘 다 쳐냈네~ 온리 지챙이꽃밭이 되어버렸드라구...
얼룩고양이 한 마리가 오늘 하루종일 눈에 안 띄길래 이놈이 숫컷이라고 여친 찾아갔나보다 그리 생각했는데
닭집 문 닫으러 가보니 엥?! 닭집 안에서 놀고 있네?!
닭들은 홰에 올라가 있고 이놈은 그 밑에서 난리...
후다다 쫓아가 내쫓았다!
아마 단감나무 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려서 들어오는 모양인데...
저 나무를 베어버릴 수도 없고...
이노무 고양이들을 우짜냐...
..........
다음날 아침... 그니께 오늘...
분주했다... 새벽부터!
초파일이라 팥시루떡 한말 해서 불전에 올리고 기도하고 내려왔다. 나무꾼은 또 먼길 부랴부랴 떠나고...
나무꾼은 내일보다는 남의 억울한 일 해결하는 일을 이번생에선 해야하나보다. 잘 해결되길 빌지만 법은 냉정해서... 인간사를 다 헤아려주질 않는다... 그저 눈물이나 닦아줄밖에...
덕분에 마을에 떡이랑 연등이랑 단주랑 나눠주는 일을 산녀 혼자 하게 생겼다.
마을 아지매 한 분이 도와주시겠다고 하시네...
초파일에 꼭 절에 가서 돈 주고 등 달아야 하는건 아녀...
내 하고프면 내가 만들던 사던 있는거 또 달던 집에 달아도 되지! 안 달아도 맘의 등 키면 되고 뭐 까짓~
내맘이지!!!
그래서 꼬꼬마연등을 집집마다 하나씩 선물로 주기로 했는데 서울 스님 한 분이 당신이 보시하겠노라고...
단주는 어느 보살님이 하시겠노라고...
갑자기 뭐가 막 늘어나버렸다...
오늘 구루마에 잔뜩 싣고 응달말 양달말 마을 한바퀴 돌아야한다.
한집 빼고는 다 무교 아니면 불교쪽인데 그 한집도 산녀하고 서로 부활절 달걀 나눠묵는 사이인지라 그 집몫도 있다.
산녀는 사람을 보지 종교를 보지는 않는다.
어떤 종교든 다 훌륭하고 좋다! 다만 믿고 따르는 이의 행동이지...
뭔일로 교회를 가면 열심히 주기도문 외우고 찬양 따라한다.
나무꾼도 독거노인 밥봉사 하시는 목사네하고 절친이다.
서로 천사네 보살이네 하며 농을 주고받으며 상부상조하고 산다...
희한하게 내 오래된 친구들 반이상은 천주교 기독교 모태신앙자들이다.
아무 거부감없이 잘 논다! ㅎㅎ 뭐가 문제 있을게 뭐인고...
크리스마스때는 하나님아부지 예수보살마하살~ 하며 축하드리고
초파일에는 너그 부처님 오셨네 하며 생신축하하고~ 그러는거지 뭐...
뭐 여튼 오늘 날이 좋아 다행이다!
...........
마을 한 바퀴 잘 돌았다!!!
집집마다 반가워하고 좋아해주고 고맙다하시니
맘이 좋다!
분명 스무가구 분량을 장만해서 싹 돌았는데...
중간에 하나 인심도 쓰고!
그러면 우리집 분량 하나가 남아야 되는디...
우째 하나도 없이 빈 구루마로 털털털 돌아오다...
뭐 산녀 하는 일이 글치 뭐...
어따 더 주고 왔겄지~
팍팍 퍼주는 버릇 어디 가나...
떡은 많이 했으나 내 먹을 떡이 없네 ㅋㅋㅋ
아까 담으면서 흘린 떡고물 줘먹은게 다여 ㅋㅋㅋ
뭐 글치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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