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안개비 자욱한 툇마루...

산골통신 2008. 11. 27. 12:37
요즘 새벽마다 안개에 휩싸인 산골을 보느라 입이 좌악` 벌어져있다.
마당 밖은 온통 허옇고... 지붕도 허옇고...
오로지 울집만 덩그라니.. 안개비 가득한 바다위에 떠있는 듯 싶기도...

그럴때면 어김없이 오두마니 툇마루에 앉아 상념의 나라로 들어가버린다.
나만의 동굴...
가끔 고양이들이 친한척 몸을 부비적대기도 하지만...
이 이른 새벽만큼은 나만의 시간이다.

희뿌연 외등불빛에 비쳐지는 안개비...
스멀스멀 기어가는 듯... 뿌려지다가 흐르다가... 스러진다.

동족은 동족을 알아본다 하던가...
한 아이가 나를 닮았다. 좌충우돌~ 순진하면 상처를 더 많이 받는다던가...
진즉에 그 아이도 자신의 동굴을 만들어놓은 듯 싶다.
아무리 못나도 부모는 자신을 닮은 아이에게 더 정이 간다 했지.

허나 나를 닮지 않은 아이에겐 가끔 휘둘리기도 한다.
논리에 약한 선녀로선 논리정연하고 확실하고 무섭도록 정확한 아이에게 막 밀리기도 한다.
이놈! 너는 자식이고 나는 부모야~ 이러고 협박공갈을 때려보지만...
금새 되려 물린다. 에공.
자식 크는 걸 보는 것이 낙이라고 뉘 그랬노~ 한대 쥐어박고 싶다.

야멸차게 정신적인 독립을 선언하고 간섭은 오우 노! 성년이 될때까지만 지원은 오우 예스~ 를 외치는
아이를 보며 너무 일찍 아이를 떼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안개비 자욱한 새벽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든다.
생각에 올곳이 잠기기 좋은 그런 시간.
세상이 잠들고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그런 시각에...
나홀로 깨어 앉아있다.

하도 딸내미가 애교가 없어~ 한소리를 했었지.
제발 좀 없는 애교라도 좀 떨어봐라... 그러면 떡고물이라도 더 떨어질지 뉘 아니?
아빠가 넘 서운해하잖냐.... 라고 말했다가~ 된통 당했다.

엄마도 애교가 없고 할머니도 없고 고모도 없고 이모한테도 없는 애교를
왜 나한테 찾아?
이렇게 낳은 사람은 부모잖아.
상대에게 뭘 바라고 애교를 떨라 하는 엄마는 사악해!!!

어제 이말을 듣고 한바탕 웃어제꼈다. 으이그... 뉘딸이냐...
그래그래~ 모든거이 내탓이지 뉘탓이겠냐... 정내미떨어지는 딸내미 같으니라구...

부모의 유전자를 이어받지 않고 조부모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이...
논리적이고 매사 정확하고 허튼말 안 하고 상대를 그대로 설복시켜버리는 강한 카리스마와 리더쉽을 가진 아이를
이대로 제도권 경쟁사회로 내보냈다간 상대에 대한 배려심없는 이기적인 아이로 클까봐
대안학교로 보냈다. 지금 물만난 고기일까... 잘 적응하고 있단다.
공동체의식과 협동심과 상대에 대한 배려심 가득한 아이로만 커준다면 무얼 더 바랠까.
거기다... 쫌만 사근사근 애교가 있었으면~~ 에공... ㅠㅠㅠㅠ

넘들은 애교많은 딸내미덕분에 매일 웃는다던데~
우리는 딸내미한테 말꼬리 잡힐까봐 매사 조심해야하다뉘.... ㅠㅠㅠ
해서 나무꾼의 원망이 대단하다~~~ 선녀 닮아 그렇다나~ ㅠㅠㅠㅠ
없는 애교를 어데가서 찾아오우~~~ 내탓아뉴~~ ㅠㅠㅠㅠㅠㅠ

농사일이 거진 끝나고 마당 설거지를 했다.
콩깍지들도 다 소마구로 갔고 짚단도 들였으며
콩이며 메밀이며 팥이며 모두 곳간에 차곡차곡 쟁여놓았다.
곳간엔 감자며 고구마 마늘 양파 참깨 들깨 등등... 수북수북 쌓여있다.
바깥 곳간엔 나락푸대가 쟁여져있고... 무 배추 파 헛간에 보관해두었으니~
또 감또개가 분을 내고 있고 홍시가 채반 가득 담겨져있다.
이제 겨우내 파먹을 일만 남았다나...

뉘 그랬어. 전에.
보일러 기름탱크에 기름이 그득 들어있고
쌀뒤주에 쌀그득 들여놓으면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안개가 걷힐 기미가 안 보인다.
점점 더 몰려온다. 어제오늘 햇볕을 못 쬐어봤다.
꼬맹이가 두텁게 옷을 껴입고 학교엘 간다.
학교차를 놓쳤단다. 자전거를 끌고 학교까지 냇가 둑길을 달렸단다.
안개가 자욱한 한치 앞이 안 뵈는 울퉁불퉁 냇가 둑길을... 아이 혼자 무엇을 느끼며 달렸을까.
이 아이가 크면 그때 그 느낌을 그대로 고스란히 추억속에서 꺼낼 수 있을까.
아니면 고생이라 생각할까... 손은 시렵고... 바람은 차고...
학교는 지각하겠고~

아이셋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는 학교가는 길이 거의 등산수준이야...

그래도 짜증내지 않고 싫다하지 않고 견디어 간다.
머 그러면 되었지. 너들 복이다. 그것도. 해버렸다.

오늘은 하루종일 안개속에 묻혀있겠다.
눈비가 온다하던데~ 아직 봐야겠다.

짐이나 싸야지. 내일부터 한 열흘여~ 이 땅을 떠난다.
애써 찾지마소~~ 돌아오걸랑 인사 땡길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