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나락 비널다.

산골통신 2008. 11. 12. 11:59

항상 마을에서 젤 나중에 베기로 소문난~

그렇다고 우리가 맨 나중에 한다고 원한 것도 아닌데... 걍 그렇게 한다.

만만잽이로 찍힌 우리인지라~ 그들도 그런 줄 알고 우리도 암말 않는다. 속이야 어떻든 간에.

하지만 울 할매... 속에 쌓인 거 말해 무엇하리. 내나 조금 알지 아무도 모른다.

항상 가만 있거라~ 암말 말거라... 하시기만 할 뿐.

내 성질대로 했다면 이집 저집 몇번 뒤집어 엎었겠다마는... 이 마을에 내 안 살고 말지 이카면서. ㅎㅎㅎ

마을에서 마음이 떠난지 오래...  되돌아올 생각은 없다.

더 깊이도 안 들어가고 더 멀리도 안 가는 지금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

 

나락이 논에서 바싹 말라야 좋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허나 하늘 날씨가 받쳐줘야 그것도 좋은 것이지. 암만.

비가 언제 어느때 올지... 나락 말릴때 날 바짝 좋다는 보장은 누가 하노.

남늦게 벤다고 남일찍 벤다고 더 좋고 나쁘고 할 건 없지만~ 

날 좋을때 널널할때 비고 싶어하는 건 누구나 똑같단 말이다.

 

올해 차나락 빌때... 우리 논 옆 나락 말릴 자리를 차지하려고 삼거리 이웃 하나가 방방떴더란다.

부자가 나서서~ 자기네가  나락 널어야 한다고 건조망 다 갖다 깔아놓고 온통 난리 법석을 피우대.

우리는 나락 말릴데가 없어서 어쩌나... 전전긍긍하면서 에라~ 말릴데 없으면 울집 마당에 갖다 널지 머~

몇날며칠 말리지 머~  이러면서 맘 접고 있었는데.

 

건조망 펴놓고 이틀인가? 기세등등 방방뜨던 그 삼거리 이웃부자...

나락이 아직 서다이더~~ 한 일주일 더 있다 베야 한다이더~~ 이러면서

쓱 들어가버리대... 어이없어.. 벙! 쪄있었다.

 

그집은 경운기도 있고 장정도 있고... 저 동구밖 께에다 널어도 될텐데 말이지...

허긴 집앞에 널고 싶겠지. 편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암말 않고 걍 맘 접고 그려려니...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가 저들 못 널게 했나... 왜 저리 야단시러울꺼나...

또 벙찐 사실 하나. 그집 차나락은 진작 베어서 말렸었고~  미나락 말릴려고 그랬었단다~ 오메~

 

그렇게 난리를 치던 삼거리이웃... 일주일이 뭐야~ 한참  더 있다 나락 비고~  또 나락을 어따 말렸게???? 

전기 건조기에다가~~ 돈주고 말리더라..

날도 참 좋았는데 말이지. ㅎㅎㅎ  또 벙~~ 쪘더랬다. 선녀는.

그럴꺼면 인심이나 잃지 말지... 왜 그랬을꼬.

 

해서 꾹 참고 가마니로 가만 있던 우리는...

맨 나중에 비고 널널하게 넓은 자리 다 차지하고 차나락 바싹 꾸이도록 말렸다나 모라나...

할매~ 이래서 가만 가만 있으라고 성질 불뚝인 선녀 말리는거요...

 

허지만 온 마을 나락 다 비고~ 이웃 물건너 논들도 다 비고~ 온 들판이 다 비어가고

달랑 울 논 나락만 남아있을때...

할매 속 좀 탔을끼다.

콤바인 쥔장 바쁘다카이~ 언제고 비주겄지. 딴농사땜에 바쁘단다.

맨 나중에 비도 좋지. 논에서 바싹 말리는 것이 더 좋단다. 밥맛도 좋고.

덜 말려도 되고.  이렇게 저렇게 좋은 점만 말씀하시는 할매...

누군 그런 줄 몰라요. 다 알지.

하지만 하늘이 우찌 할지 어떻게 알고? 날도 점점 추워지고 그러는데

작년처럼 비나 주룩주룩 와봐요~ 서글프잖유.

두번이나 물난리 겪은거 생각 안 나슈~~

 

그제 거름터미에다가 삼시랑 들고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풀고 있자니~

콤바인 쥔장 어데선가 불쑥 나타나더니 모레 비주겠단다.  @.@;

순간 하늘을 쳐다봤다. 먹구름이 가득이다. 저 날씨가 풀릴까... 과연.

하늘이시여~ 보우하소서!  ㅎㅎㅎ

 

다행히 어제 날씨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고. 바람도 살랑살랑...

나락은 희끄무레할 정도로 바싹 말라있더라.

나락 비고 바로 볏짚 걷어도 좋을만치.

 

논마다 비는 즉시 트럭에다 담아 건조망에 부어주는데~

오늘 트럭모시는 콤바인쥔장사모님께서 어째 심기가 불편하신갑다.

아무케나 부어주시넹~ ㅠㅠ

여기 불쑥~ 저기 불쑥~  나락산을 맹글어 놓고  여기는 비었고~ 나락은 밖으로 쏟아지고 튕겨 나가고~ 에라...

해서 트럭 쪼차댕기며 건조망 붙잡고 있느라고 애묵었다.

딴때는 잘 하시더만~  와 그라요?

 

해서 일거리 억수로 늘었넹~ ㅎㅎㅎ

그래도 날 좋은때 나락을 비게 되서 기분이 만땅이었던지라~ 암소리 안 하고 넘어갔다.

머 사람이 그럴때도 있지 아키면서.

 

날이 늦었던지라 바로 펴서 널지는 못 하고~

밤이슬 맞지 말라고 이것저것 다 갖다가 덮어놓았다.

 

오늘 아침.

하얗게 눈이 온 것처럼 서리가 지붕을 덮었다.

지붕만 보면 눈 온 걸로 착각하겠네.

 

날이 춥다. 괭이새끼들 여섯마리 좁은 집구석에 낑겨 쳐박혀 자고 있더라.

참 몸이 유연들 하시지~~ 어쩌면 저렇게 할 수 있을꺼나.

학교가려던 꼬맹이 후닥닥 덮쳐 다 튀어나오게 맹글고 와그르르~~ 웃어제낀다. 장난꾸러기.

 

밤새 이슬이 내려 물이 여기저기 고여있더라.

이슬 마르라고 건조망 다 펼쳐놓고 한참을 기다려

밀개로 나락 다 널고 왔다. 그걸 다 하자니 한참 걸리더라.

 

올해는 하늘이 돕는구나.

나락이 깨끗하다.  깜부기도 별로 없고 쭉정이도 눈에 안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