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빈 들 빈 가을...

산골통신 2008. 11. 7. 20:21

점점 더 들이 비어간다.

나락을 베지 않은 논은 우리 논 뿐이다.

어제오늘 비가 온다고 해서 말릴 걱정에 베질 않았더만~

우라질.. 비는 커녕... 날만 좋더라.

콤바인 쥔장 딴 농사로 바빠서  천상 다음주로 넘어가게 되었다. 헐 수 없지.

나락은 논에서 다 말라버리겠네. 그러면 하루이틀만 바싹 말리면 더 좋겠군.

바싹 말라야 현미가 잘 찧어지걸랑.

 

먼데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한 일주일 다녀갔다.  아이들은 학교든 집이든 상관없단다.

집은 집대로 편하고 좋고 학교는 학교대로 재미있고 즐겁고 좋다고...

고로 부모만 혼자 집떠나보낸다고 짠해하고 맘 애타하고 그럴 뿐이다. ㅠㅠ

이젠 전국 아니  전세계를 동네 마실 댕기듯이 다닐 아이들이다.

 

어릴때부터 키우길~ 어딜 가든 무얼 하든 프로젝트 추진하듯이 계획을 세워 하게 했더니

아마 우주 밖으로 나가는 기회가 온다면 그것도 겁내지않을 것 같다.

 

이제 겨울방학해야 집엘 오겠군. 겨울방학 계획을 얼마나 촘촘히 짜놓을런지 기대가 된다.

도무지 집구석에 안 쳐박혀 있으려고 하니...

지난 여름방학땐 전국을 싸돌아댕기다 집엘 왔더라~~ 뭐 갈 데도 많고 할 것도 많고...

집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편해서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단다.

곰의 잠을 자던가 컴부여잡고 놀던가  책 보던가  맛있는거 해먹던가~ 머 그렇단다.

농사일을 같이 하자고 하면 자기 몫을 후딱 해치우고 사라져버린다.  번개같다.

 

두 아이들이 떠난 집. 남은 꼬맹이가 분주하게 돌아댕긴다. 형누나가 있어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자기몫?이 줄어드므로 이제는 그다지 썩 반기지 않은 폼이다. ㅎㅎㅎ

세놈이 개성이 강해 잘 섞이다가도 노상 티격태격이다. 차별은 절대로 용납 못 하며

크든작든 세몫으로 나눠져야 암말 없으며 자기 영역을 고수한다.

 

큰넘은 글을 곧잘 쓴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 표현력이 좋아 마음이 끌리는 글을 써낸다.

해서 썼다하면 어딘가에 실리거나 상을 받는다. 오늘도 어떤 소식지에 실린 글을 댓번이나 읽어봤다.

서툴지만 할말을 다 했고 상황도 잘 설명했고 전달하고자 한 목적을 잘 달성한 글이었다.

헌데 제딴엔 어렵고 난해한 말을 폼나게 쓰고 싶은 모냥인데~

잘 나가다가 끝에 가서는 정리가 안 되고 꼬여버리니 문제지... ㅎㅎㅎ

지금 3년을 마무리할 논문을 쓰고 있다. 어찌 썼는지 보여주질 않아 궁금하기만 한데...  그저 믿을밖에...

논문발표회가 기대된다.

작은넘은 주로 주장글만 잘 쓴다. 필이 꽂히면 우다다다~~ 써내려간다.

필이 안 꽂히면 절대 안 쓴다. 마치 나처럼.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칩거한다.

표현력보다는 상황설명을 정확하게 쓰는 마치 신문기사 같은 글만 쓴다. 이놈은!

철저하게 합리적이며 논리적이며 납득이 되지 않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끝내는 상대를 설득시켜버리는. 해서 지 알아서 크는 넘이다.

꼬맹이는 이제 시작이다. 수줍게 자기가 쓴 시를 보여주고 냉큼 도망간다. 칭찬이 아주 많이 필요한 넘이다.

학교에서는 칭찬보다는 야단이 우선되므로 자꾸만 아이가 숨는다. 안타깝다.

요또래의 아이들에게는 틀에 박힌 콕콕 찝어내야하는 점수를 위한 논술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쉽고 재미있고 가벼운 글쓰기가 필요한데 말이지.

전에 오꿈사에 올린 작은 시에 대한 님들의 반응이 궁금한지 자꾸만 기웃기웃댄다.

해서 억수로 칭찬을 해주곤 엉덩이를 두들겨줬다.  씨익~ 수줍게 웃고는 도망쳤다.

 

들은 비어가고... 마음도 비어간다.

아이들을 떠나 보내고  아침부터 낮까지 움추려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더라.

양파밭이랑 마늘밭에 거름깔아놓았으니 씨마늘을 장만해야하는데...

소마구도 치워줘야하고...  이런저런 자잘한 일들이 많은데...

하루를 온전히 쉬어버렸다.

 

가을은 풍성하다 하지만... 비어가는 들을 보는 마음은 그다지 썩 좋지 않다.

곳간에 쌓여지는 나락이며 콩이며 메밀이며 깨며 ... 이런저런 수확물들을 보면 마음은 편해지지만

빈 들을 보면 쓸쓸하다.

저 텅비고 우중충한 빈 들을... 지금부터 내년 봄까지 봐넘겨야 하는구나. 어찌 견디지...

 

겨울이 오는 것을 좋아라 하고 구들장 지는 것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선녀는 올해는 없다.

참 희한하지.  변덕쟁이인가봐.

 

오늘은 술이 심히 땡긴다.

논둑에 심어 거둬들인 질금콩으로 콩나물을 길렀다. 확실히 장에서 사온 콩나물하곤 차원이 틀린 맛이다.

이걸 안주삼아.. 소주 댓병 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