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고추농사

산골통신 2008. 7. 30. 16:09
 
고추 빨갛게 익기도 전에 주문부터 들어온다.
10근 30근 찜해놓았으니 농사 질 지으란다. 오메...
은근슬쩍 우격다짐으로 입도 벙긋 못하게 해버린다.
어버버...
 
이 살람들아... 아직 고추 붉지도 않았소.
 
날은 하염없이 흐르고 흘러...
어느날 문득 들어가본 고추밭.
쥔장도 모르게 첫물 고추가 붉어간다. 어느새.
언제 따봐도 첫물이 가장 굵고 좋다.
 
키 작게 키우려던 노고는 온데간데 없이
자꾸만 키가 큰다.
비닐하우스 천장까지 닿겠다.
천장에 매달아놓은 끈에 죄다 매달아야 할 판이다.
우째 이런겨...
거름도 적당히 줬고 물도 적당하게 줬는데...
넘들과 다를 것 없이 농사 짓는데 왜 이리 우리 고추만 장다리 같이 크는겨..
저 아래 성열이네 고추도 키가 작고 구이장네 고추도 키가 그만그만하구만...
 
키가 크니 자꾸만 자빠진다. 줄을 벌써 몇번째 매주는건고.
할매가 고추밭 풀 뽑으시다가 정글을 헤집다 온 기분이라고...
퍼뜩 정신이 들어 고추밭으로 쪼차가봤다.
어느새 커서 또 자빠질라카네... 지들끼리 엉켜서 볼만하더라.
줄 매준지 얼매 안 되는데 말이지...
 
그래도 우짜냐... 줄뭉치랑 가위하나를 허리춤에 매고 찔러넣고
고추밭 고랑고랑을 아니.. 정글을 헤집고 다닌다.
척척 늘어진 고추가지들을 거둬다가 한곳으로 몬다음 줄을 팽팽히 잡아맨다.
저들도 의지할 데가 있어야 되겠지. 그냥 냅두면 온통 바닥에 널부러질꺼야.
 
비닐하우스 골조 기둥에다 끈을 단디 매고 고추말목과 고춧대궁들을 붙들어맨다.
그래야만 자빠지지 않는다.
 
이제는 일이 몸에 익었나. 슬슬 앞으로 나간다.
비닐하우스 하나를 뚝딱 끝내고 또 다른 비닐하우스로 들어간다.
그렇게 세 비닐하우스를 헤매고 나오니
온몸이 마치... ㅎㅎㅎ 신데렐라같다. 재투성이...
전에 진딧물 잡노라고 또 예방하느라고 아궁이 재를 쳐다가 훌 뿌려댔었거든
 
이런저런 채소들 진딧물 잡는데는 아궁이 재가 최고더라고.
약이고 머시깽이고 다 소용없드라고~
물기가 있는 곳에는 그냥 뿌리고 마른 곳에는 물을 좀 섞어 흩뿌려줬었다.
그 속을 헤집고 댕겼으니 온몸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ㅎㅎㅎ 볼만하겠지비...
 
아궁이 재가 그렇게 좋은지 몰랐더랬다.
내는 아궁이 재는 정구지밭에만 뿌리면 좋은 줄 알았었는데
이제보이~
 
오이밭에도 토마토에도 배추에도 열무에도... 고추에도...
참깨에도...
얼마든지 뿌려도 되더라.
병충해 예방도 되지만 거름도 끝내주잖우~
 
우리 아궁이에 태우는 나무들은 참나무 소나무들이다.
해마다 표고버섯 하는 이들이 벌목하고 간 다음 산에 올라가보면
참나무들이 쌔고 쌨다.
앞으론 아궁이 재를 아주 많이 이뻐해줘야지.
 
여름이다.
장마철이다.
온통 초록이다.
 
그 속에 분홍 노랑 연꼿이 피어오르고...
주홍 참나리꽃과 원추리가 기를 쓰고 피어난다.
꽃범의꼬리가 하얗게 피고
초롱꽃이 가득가득 핀다.
봉숭아가 한창이고 분꽃이 밤마다 핀다.
배롱나무 꽃들도 참 이쁘다.
 
마당 풀은 구제 안 하기로 했다.
그냥 잔디 뗏장을 구해서 좌악 심기로 했다.
도저히 호미로는 안 되어 예초기 신세를 져야 할 거 같다.
이 마당에서  저 마당 끝까지 한바퀴 뽑았는데
돌아서니 이 마당에 풀이 그득이더라... 눈물이 찔끔나더라...
풀 뽑고 비 한 번 내리면 풀이 쑥쑥
풀 뽑고 비 한 번 내리면 풀이 또 쑥쑥~
졌다!!!
 
빨래가 안 말라 방이고 마루고 보일러를 틀어놓고 발디딜틈없이 빨래를 늘어놓았다.
그 바람에 온식구가 아랫채로 쫓겨나 그곳에서 살아야했다.
 
아궁이 바닥에는 청개구리들이 살고
방티연못에는 맹꽁이들이 산다.
 
할매는 참깨밭 사이사이에다 팥을 심으시고 들깨모종을 하신다.
식전으로만 일하시기 때문에 내는 식구들 밥해대느라고 일을 못 거든다.
 
방학이라 밥상 차리는 것이 일이다 일~
애셋이 몽땅 밥상머리에 앉아있는데 자리가 비좁다.
이젠 밥상도 큰걸 구해야겠으~
그 먹어대는 양이 엄청나다.
 
텃밭 한바퀴 돌면 하루  세끼 이상 밥상 차릴 것이 나오는데
세상에...   한끼 밥상으로 끝나버리더라...
 
상추도 장마끝에 다 물러버리고...
열무는 아직 어리다.
돌깻잎이 있긴 한데 먹어대는 양을 보아하니... 자래가질 않는다.
큰넘이 몽땅 대접에 뜯어넣고 비벼먹어버리는데... 입이 딱~~
 
토마토도 호박도 오이도 가지도... 달리기가 무섭게 없어진다.
정구지도 싹 베어먹어서 다시 돋기를 기다려야 한다.
 
봄에 깐 병아리들이 아직 덜 자라...  달걀도  모자른다.
한달 더 있어야 할까. 아니면 그넘들 잡아무까...
 
하도 다급해 감자를 캐다가 삶아야 했다나.
옥수수는 아직 안 여물었고~
 
그래도 끝내주게 먹어주는 아이들이 있어 좋다.
한달 열흘... 방학동안에
아이들 입 안 심심하게 하려면
이리 앉아있으면 안 되겠군~~
할매네 정구지라도  가서 슬쩍 베어와서 적이라도 꿔줘야지.
매운 고추 썰어넣고...
 
아이들은 지리산 뱀사골 2~3미터 되는 물에서만 노닌지라...
집앞 냇가 보뚝물은 성에 안 차는가보더라~~
 
아기고양이들 이사갔다.
아이들이 방학하고 노상 집에 머무니...
지들이 못 살겠던가보더라~
전격적으로 어젯밤 이삿짐 싸들고 집나갔다.
오데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