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김장

산골통신 2007. 12. 30. 20:22

배추가 한달가까이 밭에 있었다.
비닐과 천막과 보온덮개와 차광막을 뒤집어쓴채.
온동네 사람들 오며가며 만날때마다 물어본다.

배추 저렇게 둘꺼냐고. 배추 언다고.
김장 어여 해야지 뭐하느냐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김장하러 올 사람이 와야 김장을 하지비~~
배추 뽑아놓았다가 얼거나 하면 우짤라고...

한주 두주 미루기 시작한거이 벌써 한달가까이.
월초에 한다했다가 중순에 한다했다가 결국엔 이달 말로 일정이 확실히 잡혀지고
날 좋기만을 바랬다.

허나 일기예보... 한달넘게 봄날씨 뺨치게 따뜻하던 날씨가
강추위 폭설~ 강풍 어쩌고 저쩌고... 사람 간 졸이게 만들어놓는다.
할매 난리나셨다.
선녀 닥달해서 배추 뽑아 실어나르게 하고 다듬고 씻고 건지고...
마치 군대 김장 담듯이~ ㅎㅎㅎ

마침 애들 이모가 와서 거들어줘서 훨 수월...
배추를 씻어 건져주고 갔다.
그리곤 노숙자 독거노인들 수백명 밥해주는 당번이라고 서둘러 설로 올라갔다.
몸살 안 났을려나 몰러...

날은 추워지고 방티연못 꽁꽁얼어붙고 수도 얼어붙고
강냉이 물그릇 아롱이 물그릇 얼음덩이 된지 오래...
새끼낳은지 얼마 안 된 아롱이.. 걱정이 태산.
흥근히 고기국물 만들어 갖다주면 얼마안되 얼어버려...
뜨거운거 갖다주면 뜨겁다고 못 먹어.
지키고 앉아 식혀줘야만...
내일은 더 춥다하는데 어쩔란지. 새끼들 얼어죽지는 않겄지?

배추 이백여 포기.
속이 덜차서 포기수는 많은데 부피는 예년의 반도 안 되어.

도시에서 형제들 차례차례 내려왔다.
빈통을 바리바리 싸들고.

배추 씻어건져놓았으니 할일은 양념 만드는거.
사과랑 양파랑 마늘이랑 생강이랑 찧어야 하는데
마늘은 미리 찧어놓았는데 생강과 사과 양파가 문제로구나.
작년엔 선녀가 도깨비방망이로 갈았는데...
양이 많아 도저히 감당이 안되어   저거 다 갈고나면 어께 팔이 저려 심하게 몸살을 앓거등.
해소 올해는 어찌 편하게 쉽게 안 될까싶어 이리저리 꼼수를 써본다.

그래 이웃 사과농사하시는 머슴님네 쳐들어가 사과 가는 기계 신세좀 져보자~ 싶어
전화를 득달같이 해본다.
마침 집에 계모임이 있어 손님들이 많네..
헐 수 없이 저녁에 쳐들어가기로...

생긴거 같지않게 희한치... 뭘 신세지고 뭐 부탁하는걸 잘 못해.. 쭈빗쭈빗... 긁적긁적~
이번엔 눈 딱감고 사과도 좀 부탁하고  좀 양파랑 사과랑 갈아도 되느냐고 부탁을 드렸다.

저녁참에 양파 한 다라 사과 두 다라~
외발수레에 싣고 갔다.
우와... 이거 혼자 못 하겠구낭~
결국엔 머슴님이 다 해주셨넹~
득득 잘 갈아진 사과랑 양파랑 집에 갖고와서
이따만한 통에다가 들이붓고 부지런히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액젓 넣어 뒤섞는다.
갓나물도 채썰어 넣고.
소금 두어 되 넣고 찹쌀죽 넣고...


양념만 한 통이 그득이다.
물끼 뺀 배추를 마루로 다 나르고 본격적으로 전을 펴고 각자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한다.
일손이 많으면 슬쩍 뒤로 빠질까 싶어 눈치를 봐하니~
에구... 없네...
올해는 조카들도 안 오고. 할매도 뒤로 빠지고~
천상 선녀도 고무장갑 끼어야쓰겄네. 잉.

날은 차고 눈발은 날리고 바람도 불고... 엄청 기온차가 심한데.
배추 나르랴 이것저것 따뜻한 집안과 억수로 추운 바깥을 들락날락했더니 코도 시큰거리고 머리도 무겁고...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배추를 봐하니 저걸 언제 다 버무리나~ 싶은거이...
기도 맥히고...
그렇다고 양념 다 만들어놓았는데 안 할 수도 없공.
시작이 반이다 싶어 덤볐다나.

 

 

===이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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