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비를 기다리며.

산골통신 2007. 5. 24. 01:53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농사꾼.

땅만 내려다보며 사는 농사꾼.

 

먼지 펄펄 나는 밭고랑을 벌써 무뎌진 호미끝으로 박박 긁는다.

먼넘의 풀은 오살나게 자라고 있고. 지랄맞게 징그럽다마는...

그래도 갸들도 우리맨치로 살라고 나온 거고 인간보다 훨 낫다 아이가...

 

참깨심고 고구마순 따서 심고 풀 메고.

소마구치고 논둑에 남아있던 겨우내 까묵고 있던 볏짚단 몇개 가져오고.

머 오늘 한 일은 그정도다.

 

할매는 밭이 묵어자빠지는 것을 못 보시겠단다.

이젠 제발 일좀 하지마시소~~

제발 이젠 좀 인생이란 놈 즐기시면서 사시소~

일은 내가 다 하께. 제발.

 

할매 일 못하시게 밭이고 산이고 몽땅 매실을 심어버렸다.

그 매실 누가 감당할지는 아무도 장담못한다마는...

그래도 급하니 우째. 심고봐야지.

 

그래도 울 할매 호미들고 밭에서 사신다.

오늘도 화를 퍽퍽 내가면서 할매를 밭에서 끌어내보려고 했으나 실패..

 

장등에 아지매.. 환장을 하신단다. 일을 못해서...

논을 보고도 밭을 보고도... 눈앞에 번히 보이는 일을 보고도... 일을 못하는 상황이 되니

더 환장을 하신단다.

몸이 안 따라주고 몸이 편찮으시니. 더 미치시겠단다.

동구밖 산길가에 우두커니... 앉아계시는 모습을 보니 맘이 아파온다.

심장이 안 좋아 3키로 이상은 들지 말라는 의사의 진단??? 엄명을 받았단다.

그래도 일을 하고 싶어 마음은 밭을 향하나... 몸이 이미 배반을 해버렸다.

 

나중에 그 지경 당하지 말고 할매도 제발 호미좀 놓으시소~

제발 남은 인생 즐기시면서... 재미나게 좀 살다 가시소... 애원을 해도.. 들은척 만척~

당신 친구분들 다 돌아가시고 이제 남은 사람 별로 없다면서도...

마음은 청춘!이라...

 

농사꾼들... 땅 놀리는 것이 죄악이라 했나...

일할 수 있는 몸뚱아리 놀리는 것이 죄악이라 했나...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소...

농촌에 할매 할배들 넘쳐나고 애울음소리 끊어진지 오래요.

그러니.... 제발 생각좀 고쳐잡수시면 안되겠소...

 

에구~ 말 안 듣는 할매들... 내 모르겠다.

 

내일 비가 온다하여 비설거지를 대충 해놓고...

소마구 소똥도 댓구루마 끌어내주고... 톱밥이랑 왕겨랑 깔아줬다.

가끔 소한테 말을 붙여본다.

쇠스랑 든 선녀가 무서운지 슬슬 피하기만 하는 소한테.

송아지는 선녀 피하느라 난리를 친다.

한번 꼬리를 된통 잡힌적이 있어서...

 

쇠스랑을 짚고 소한테 말을 한다.

똥 치우게 좀 비켜주지???  존말할때???

이러면 들은척도 안 한다. ㅎㅎㅎ

 

슬금슬금~ 소 반대편으로 가면서 툭 치면~ 이놈봐라.

지도 슬금슬금 비켜준다.

존말로 할때는 들은 척도 안하다가. 선녀가 몸을 움직이면 잽싸게 튄다.

소들하고 대화는 말로 하는 거이 아니라 몸으로 해야한다는 것을 느낀다! ㅋㅋㅋ

 

내일 비도 온다하니 소잠자리가 축축할 거 같아 간만에 왕겨랑 톱밥이랑 듬뿍 깔아줬다.

풀이랑 짚단도 넉넉히 얹어주고.. 머 그래도 맘은 늘... 그렇다마는...

 

고추밭 돌담사이에서 통통한 뱀을 봤다.

어지간히 굵드라... 이놈!

저번에 봤던 뱀새끼들 어미인가?

얼라들도 학교 오가는 길에 뱀을 많이 본단다. 늘 조심을 시키긴 하지만...

 

모내기 한창이다.

논마다 물이 그득그득이다가... 모내기 한다고 물을 좌악~ 뺐다.

옛날 같으면 지금이 한창 농번기일텐데... 머 썰렁하다.

이앙기 한대 움직이고... 모판 날라주는 사람 하나 있거나 말거나...

머 그렇다.

새참 먹는데 개평꾼도 없다.

 

우리는 아마도 비온 뒤... 논에 물가둔뒤에 논삶고 모내기할거 같다.

도랑에 물이 바짝 말라버렸다.

보 물은 맘대로 쓰라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