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안 하면 안 되는 강박증?
일을 안 하면 큰 일 날 것 같고
손해인 것 같고
게으른 사람인 것 같고
시간이 아깝고 저 귀한 햇살과 또 여름철엔 구름 그늘이 아깝고 또 아까워... 동동거리면서...
오늘 일 안 하면 내일 더 힘들어질 것 같고
올해 농사 망칠 것만 같고
동네 사람들한테 우사당할 것 같고
뭐 그런 생각들이 마구마구 든다.
그래서 한 며칠 맘 잡고 들일 안 하고 버텨봤다.
멍때리기
폰 부여잡고 놀기
친구들이랑 수다떨기
책 뒤적거리다 잠들기
인터넷 쇼핑몰이랑 책방 돌아댕기다 지름신 강림하사 지랄떨기
마당냥이들하고 봉덕이랑 놀기
다큐같은 볼만한 프로그램 찾아서 보기
드라마 영화는 몰입하거나 그러면 감정노동이 힘들어져서 잘 안 본다.
그래도 심심하면 맛난 것 만들어 먹고 놀기
집구석 정리정돈하며 분리수거하기
미장원 가서 거의 삭발수준으로 확 밀어달라 했다가 되려 핀잔 듣고 선머스마같은 머리 만들어 오기
뭐 기타등등 해봐도 하루는 가는데...
가는데 말이지...
당췌 재미가 없고 몸은 찌뿌둥하고 살만 뒤룩뒤룩 찌는 것 같더란 말이지...
사흘을 버티고 버티다가 뛰쳐나갔다.
요새 건들8월인지라 할 일들이 딱히 없다.
그래서 놀아도 된단 말이다.
풀들만 슬슬 관리해주고 말면 되는데...
놀면 뭔 사단이 나는지 원~
그새를 못 참고 기어나가 마당을 한바탕 뒤집어 엎었다는...
꽃이 지고 빈 화분들을 한짝으로 치우고 잔풀들 뽑아주고
쓰러지고 자빠진 가지들 말목 박아 일일이 끈으로 묶어 세워주고
씨앗 여문 애들 씨받아 갈무리 하고
가을맞이 국화 화분들 꺼내어 날나리 보기좋게 늘어놓고
에어컨 모터가 고장나 어제오늘 고치러 오는데 그동안 에어컨 놓인 자리가 여엉 못마땅했었던지라 그 자리를 비우고 그 한짝 옆으로 자리를 만들어 놨다.
큰 브로크 여섯 장을 들었다놨다 옮겨 만들었다.
그 바람에 쫓겨난 참나리꽃 구근과 삼잎국화 뿌리들을 저짝 주목나무 근처로 옮겨 심고 나머지는 내년 봄에 싹 올라오면 캐 옮기던가 하기로 하고...
낫으로 시든 가지들을 베어내고 치고 하다보니 어느새 마당이 훤해졌다.
철이 바뀌면 한번씩 해야하는 일인데 마침 오늘 일 발동이 걸려서 속 시원하게 해치웠다.
산녀라는 사람은 놀면 안 되는 성정머리인가 보다.
코로나백신도 맞았고 핑게김에 한 사나흘 쉬고 더 쉬어도 되는데...
노는 데는 재주가 없나보다...
천상 일할 팔자여...
자잘한 텃밭 세 군데는 풀관리를 간간이 해줘서 손 갈일이 없다.
상추씨도 싹이 텄고
배추 모종들이랑 무싹도 봐줄만 하고 벌레들만 아침저녁으로 잡아내주고...
쪽파밭에도 일제히 싹이 돋아 이쁘고
알타리도 싹이 텄고
대파에 웃거름 조금 더 해야할듯하고 자꾸 자빠져...
정구지꽃은 꽃 다 본 다음 씨앗 맺으면 싹 베어낼거고
바질이 여기저기 싹이 터서 자라는데 자꾸 자빠져서 묶어 세워주고
아스파라거스는 비가 잦아 그런가 순이 자꾸 돋아나서 고사리모냥 꺾어먹기 좋더라...
애호박은 잘 안 달리는데 어쩌다 하나 달린 거 저녁반찬 해먹을까 싶어 따오고
가지는 해놔도 잘 안 먹어서 내년엔 안 심을까 싶고
깻잎은 잘 먹으니 반찬해놓기 바쁘고
뭐 그렇다.
오이덩굴에 아기오이가 자꾸 달려서 매일매일 하나씩 따먹는 재미가 좋다.
이웃 아지매 지나가길래 불러다 미처 못 따서 노랗게 익은 오이들을 한 양푼 따가게 했다.
저 아래 큰 밭 두 군데는 며칠째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 밭에는 고구마와 토란 노각오이 단호박 금화규 그리고 콩이 자라고 있다.
노각오이나 따러 가볼꺼나 갈 일이 없다.
금화규는 조만간 씨앗을 주고 심으라 한 도시장정 중 한 사람이 2차 수확하러 온단다.
산밭에는 풀 구덩이인데 추석 지나고서야 제초기가 들어갈듯 하다.
산나물밭도 예초기로 확 쳐달라 해야지...
저걸 호미나 낫으로 하자니 골병들 것 같아 외면하고 돌아섰다.
고추 비닐하우스는 이제 끝물 고추 딸 일이 남았고 약 한달 후 한로 무렵에 고춧대를 뽑아야 하니
그 전에 고춧잎하고 지고추용이나 찜고추용 풋고추를 딸 일이 남았다.
뒷골밭에는 가본지가 언제던고...
6월말 매실 딴 뒤로 가보질 않았다. 풀만 정기적으로 나무꾼이 깎아주고...
아쉬람터 밭에는 들깨와 무 배추가 잘 자라고 있다.
가끔 산밭 올라갈 적에 들여다봐준다.
이제 한 해 농사 갈무리 할 일이 하나둘 생가고 있다.
겨울농사인 마늘양파... 심을까 말까는 그때 가서 결정하기로 하고...
만약 농사일이 없었다면 뭘 하고 살았을꺼나?!
전에 다니던 직장을 다시 다니자니 경단녀가 되어버려 써주는 곳이 없고 굳이 다시 다니려면 최첨단 신기술을 배우면 되려나...
전에 하던 방식은 구시대유물이고 이젠 인공지능시대라... 산녀가 대가리 디밀 세상은 아니더라마는...
그러니 설 곳을 잃어버려 천상 두손 털고 돌아서야했다.
그래도 뭐든 할 일을 찾으면 갈 곳은 많은데 어찌된거이 나이 많다고 열정페이가 기세등등하더라...
천상 내 일한만치 나오는 산골 농사일이 제격이라~
다만 일 안하고 논다고 죄의식이나 죄책감은 갖지 말자고오...
누가 잡으러 오는거 아녀!
제때 일 못하면 다음에 힘든 거야 당연한거고...
처음 농사일 배울때 불도저같이 밀어부치는 할매한테 치여서 이런거 같으...
할매 생각엔 저년 이리 힘들게 일 시키면 도로 서울로 겨올라 가려니 하고 일부러 매섭게 일 시키셨지만 ㅎㅎㅎ
인제는 일 안 한다고
일 그리 못해서는 시골 못 산다고
일 못하면 당장 꺼더가거라~ 할 사람 없으...
인제는 뉘 뭐라 할 사람 없는디...
뉘 쫓아와서 혼낼 사람도 없고 말이지...
이젠 즐기면서 합세!!!
그래도 된다고...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