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두손모두 호주머니에 푹 찔러넣고 툴툴거리고 댕긴다.
방아를 또 찧어야 한다고 그러고..
고추밭 정리를 빨리 끝내야 거름을 낸다고...
고추밭 장만이 됐던지 말던지 간에 고추모종들은 쑥쑥 자란다네~~
올해도 어김없이 고추농사는 지을 모냥인데... 에구야...
고추가루 없이는 하루도 몬사니 이 어찌된 음식문명인지~
이것도 중독인게야... 밥 중독 김치중독!
수년 전에...
고추 아직 붉어가기도 전에 고추가루 똑 떨어진 적이 있었다.
보나안보나 할매 고추가루 몽땅 대처사는 사람들에게 싸그리 퍼줬다...
당신 드실 거도 안 남기고..
쫌 있으면 고추 붉어진다~~ 우리는 고추 붉어지면 그거 말려 빻으면 된다~ 다 가져가 가져가라~~
이랬을껴 암~ 틀림없어.
고추가 붉어지긴 뭐가 붉어져~~ 오늘 아침에보이 쪼매 검붉은거이 눈에 띄더만~ 쯔비...
어쨌든 별 수 없이 고추가루 없이 며칠을 보내게 생겼는데...
허긴 선녀도 암생각없었지비~ 그깟 고추가루.. 없어도 되어...
아주 만만하게 생각했었어. 김치 안 묵어도 살잖유?? 하면서.
헌데 봐봐여~
간장에도 고추가루 들어가네~ 나물 겉절이에도 들어가네~
얼큰 닭개장에도 들어가네~ 부치개를 꿔먹으려해도 맹숭맹숭 맨간장에 찍어먹어야 하고~
대충 나물에 밥 비벼먹으려해도 양념간장이 없으니 밋밋하고...
뻘건 고추장 아무리 들이부어도 제 맛이 안 나. 우리는 고추장파가 아녀~ 간장파여...
된장찌게를 자작하게 끓여도 마지막에 고추가루 한술 넣어야 칼칼하니 맛이 살아나는데..
이걸 해묵어봐도 고추가루 없다~~ 저걸 해도 고추가루 없어~
선녀 밥 할 때마다 고추가루 찾아 입이 궁시렁거리니~~
할매~ 빨간고추 여 있다~ 이거 쫑쫑썰어서 넣어봐~ 고추가루가 대수냐?
온 고추밭을 다 뒤져 뻘겋다 싶으면 다 따오셨지비~~ 허나.
아무리 시뻘건 고추 팡팡 썰어넣어봐도... 맹숭맹숭~ 매운 맛도 안 나고 칼칼한 맛도 안 난다.
참 희한하지? 도리어 단맛이 잡혀.
할매요~ 안 되겠는데여~ 어데 가서 고추가루 쪼매만 빌려오시더~
앞집으로 갈까여? 뒷집으로 갈까여?
하루였던가? 하루 반이었던가... 고추가루 없이 끼니를 연명??? 하시다가..
어느날 할매 앞집으로 부리나케 뛰가셨다.
고추가루 한사발 꿔오셨지비~~ 앞집에선 먼일인가 했을껴~
아니 고추농사 많이 지으신 분이 고추가루 꾸러 오셨으이...
고추가루 넉넉히 풀고 된장찌게 끓이고 양념간장 만들어 나물겉절이에 밥 쓱쓱 비벼잡수시던 할매..
이제야 살겄다. 휴우...
내사 이때껏 살면서 고추가루 없다고 밥 못 묵겄다고 하긴 첨일세...
왜놈들이 조선사람들 매운거 먹고 다 죽으라고 고추를 퍼뜨렸다던데~
우리 이거 중독되어서 고추 없인 못 살겄는데 어쩌냐~
이럴 줄 몰랐다. 만만하게 볼기 아닐쎄~~
니 고추가루 아껴먹어라~~ 퍽퍽 넣지 말고...
애꿎은 선녀만 야단맞았다. 에구 내가 무신~~
해서 그해 첫물 고추 다 따서 부랴부랴 말려서 방앗간 가서 빻아왔다.
그 담부턴 고추가루 신주단지 모시듯~~
할매가 또 맘이 변해 다 퍼주시더라도 남아있게끔~
비상식량 간수하듯이 선녀곳간에 항상 고추가루 한 봉지는 남아있다라는~~
그뒤로 큰손 할매도 고추가루 귀한 줄 아셨던지~
고추가루만큼은 나누는 손이 조금 작아지시긴 하셨다는
뭐 그런 우습지만 우습지 않은 기맥힌 이야기..
날씨가 아무리 춥네 마네 해도 내 어릴적 추위만치는 아니지...
옛날엔 논이고 냇가고 꽁꽁 얼어서 미끄럼타고 썰매타고~ 온 겨울내내 그런 야단도 없었는데...
요새 냇가가 얼어??? 겨울 통 틀어봤자~ 한번 얼었을까?
몇년전엔 한번도 안 얼었다구.
그 몇년 전에... 오늘 무지 추워~ 틀림없이 오늘은 냇가 물 얼었을꺼야~
울 얼라들 썰매 타러 갈라고 쪼차갔다가 불퉁 입만 억수로 튀나온채 집에 들어왔는데...
그해 겨울에도 몇년만의 추위 어쩌고 떠들었지비???
어쨌거나 날 춥다고 들앉아있다간 데굴데굴 굴러댕기는 드럼통 되기 십상이라~
햇살 따뜻하게 비치는 뜰아랫채 마루에 올라앉아 자울 자울 졸더라도~
밖에서 시간보내려고 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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