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닭들의 전쟁...

산골통신 2018. 2. 6. 17:53

 

제가 처음 닭을 키우면서

오일장에 가서 애지중지 구해 온 멋진 장닭 한 마리가 있었죠...

닭 수명이 30~40년 간다기에 그럼 네 수명 다 할 때까지 살아봐라...

뭐 이러면서 암탉 몇 마리 더 구해서 살림을 차려줬죠...

 

그게 아마도 4년 전...

 

기세당당 품위 있고 메너 좋고

식구들을 잘 거느리며 보기좋게 살았더랬죠...

수평아리들이 자라 하극상 힘겨루기 서열싸움을 걸어와도

다 물리치고 그 위세가 대단했었죠...

 

우리들도 대장장닭이라 부르며 이뻐라 하고 더 챙겨주고 믿음직 듬직해했더래요...

 

며칠 전 어느날...

홰에 올라간 대장 장닭이 어리버리 눈도 못 뜨고 머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어 뭐야... 너 왜 그래?

 

살펴보니 올 봄 깨어난 병아리들 중 두 마리 장닭...

안 잡아먹고 씨장닭으로 놔둔 그 두 마리도 벼슬이 피투성이...

 

아하!

한바탕 서열싸움을 했구나!!!

거기서 대장장닭이 졌구나...

나이 먹어 늙어서 진거야?!

 

그래서 홰에서 못 내려오고 그리 처량하게 있는거야?

달리 해줄 도리가 없어 그냥 물과 모이만 챙겨 주고

며칠 후 대처에서 돌아와 보니...

 

다른 장닭들에게 쫒겨 구석탱이에 몰려 찌그러져 있네요...

그물망에 발도 하나 걸려있고... 도망도 못 가는 놈을

가만 붙잡아보니 아이구 가벼워라...

그리 듬직하고 튼실했던 옛모습은 아~ 옛날이여...

 

하도 불쌍해서 발가락에 걸린 그물을 벗겨내주고

따로 격리해서 모이랑 물이랑 챙겨주니

허겁지겁 먹네요...

 

그날 저녁 닭집 문닫으러 가보니

작은 홰에 올라가 혼자 웅크려 잠드려 하는 모습을 보니

아이구 초라해라...

 

나무꾼이 분노를 했습니다!!!

아니 하극상도 유분수고

니들을 챙겨주고 보살펴주고 지켜줘왔던 대장을 이렇게 처참하게 만드는 법이 어디 있노?!?!?!?!

엄청난 분노였어요...

 

당장 그 두마리 젋은 장닭들을 잡아다 털 뽑아버릴 기세로...

말렸죠.

그게 닭들 세계다!

거기다 인간들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

 

그냥 그대로 편안하게 품위있는 노후와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달래고 또 달랬죠...

 

나무꾼은 대장장닭을 회복시켜 다시 힘을 기르게 해서

하극상을 벌인 젊은 장닭들과 다시 싸움을 하게 하고싶다네요...

 

안된다...

이미 한번 기가 꺽인 이상 회복은 어렵다...

잘 모르지만 그러지않겠나...

 

어제 저녁 한동안 입씨름을 했네요...

 

닭을 키워 잡아먹는 인간들이지만...

그래도 키우는 동안 측은지심이 들어서 그런가...

감정이입이 되어버렸네요...

 

대장장닭 몸이 회복되는대로

작은 닭집으로 옮겨서

올봄에 태어난 어린 암탉들하고 지내게 해주기로

잠정 결정을 봤네요.

 

그래도 말이죠...

사람맘이 그렇더라구요...

'산골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궁이 속 들냥이   (0) 2018.02.28
봄은 고양이처럼 오고...  (0) 2018.02.27
춥지만 따사로운...  (0) 2018.02.06
청.국.장 향이란  (0) 2018.01.07
무 말랭 이 차  (0) 2017.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