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한여름 풀의 열정.

산골통신 2009. 7. 21. 12:51

가히 풀들의 세상이라 할 만 하다.
 
날이 다행히 흐려 일하는데 뜨겁진 않았으나
쉼없이 흘러내리는 뚝뚝 떨어지는 땀이여...
일 끝에 씻으려고 보이 거죽이 한꺼풀 벗겨진 듯한 개운한 느낌~ 그거 알려나...
염천에 농사일로 땀으로 목욕해본 농사꾼들은 그 느낌 아시겠지.
 
아침 일 시작이 늦었다. 면사무소에 낼 서류때문에 이장네 들락거리다 그리되었다.
 
할매는 낫들고 고추밭 둘레 풀들을 베어놓으셨고
한키를 넘는 풀들 등쌀에 낫질 몇번에 풀들이 산처럼 쌓인다.
 
감자를 케고 난 밭에 풀들이 뒤덮어 호미로 뽑아놓았더니
장마비에 다시 살아나... 으흐흐..
 
이 밭에 가을 김장배추를 심어야 하는데 이꼬라지에 심을 순 없는 일~
그걸 일일이 다시 긁어내 산처럼 쌓아놓고 비닐로 덮어놓으면 푹 썩어 거름이 된다네~
 
일이 순서없이 대기하고 있다.
일 차례를 정할 수도 없이 이 일 하다 저 일 하다 닥치는 대로 하고 본다.
 
풀을 끌어내 소마구로 날라놓고
사과가 너무 다닥다닥 달려 솎아주고
고추밭에 진드기가  설쳐 아궁이 재를 삽으로 쳐내 휘휘~ 뿌려주고
마당 배롱나무에도 시꺼멓게 진드기로 덮여 거기도 쳐주고~
 
풀을 쳐내다 말고 땔나뭇단 위 호박덤불에 애호박 두개~
돈적 꿔먹기 딱이다.  애호박은 눈에 띌때 언넝 따야지 봐뒀다가 나중에 따지~ 미루면
십중팔구 이자묵던가 장소를 못 찾던가 그렇다~ ㅎㅎㅎ
 
나뭇단 위로 올라가 손을 뻗는 찰나!
휘리릭~~ 사라지는 긴 비얌!!!
웬 시꺼먼 넘이 나뭇단 사이로 들어가는데...
허걱!  저넘을 잡아 말아?  내 손에 낫 있는데!!!
 
옥수수는 수염이 말라가고~
수염 바싹 마르면 거진 익었다는 건데... 하나 까볼까~
 
나무꾼은 예초기 들고 뒷골밭으로 올라가며 풀을 친다.
한참 풀을 깎다가 발견한 알 다섯개.
벌레 먹어 베어넘긴 복숭아 뿌리 둥치에 어떤 닭대가리가 알을 낳아놓았어~
이 염천에~ 저 알 성할까?
어쨌든 할매한테 갖다드렸다. 검사좀 해보시더~
 
지들이 알 품어 병아리 깔 것도 아니면서 허구헌날 알 낳아놓고 지들도 까묵어~
우리는 못 찾아 못 먹고~ ㅠㅠ
 
살구 자두 복숭아 지천으로 달렸으나
따먹을 사람이 없다.
너무 아까워 할매는 몽땅 냉장고에 쳐넣어두나~
그걸 사람 입이 드무니 다 먹어내질 못해~
하루하루 골라내어 소 닭한테 갖다준다.
 
애기주먹만하던 수박이 내 머리통만하고~
가지도 주렁주렁 달려있고 오이는 도깨비방망이 맹키로 굵다.
토마토도 장마철에 안 떨어지고 달려있고...
 
누가 다 먹나.
 
정구지는 자랄대로 자라 안 베면 꽃피겠던데~
낫들고 한 소쿠리 베다 놓았지.
뭐해먹지? 적꿔먹을까?
 
열무도 장마철엔 다 녹는데 어여 뽑아 겉절이 해묵자~
 
참깨는 해가 따글따글 볶아대야 잘 된다는데~
이리 비가 찔끔찔끔 와대서야~ 어디 잘 될까~
비에 다 썩어나가는거 아닐까?
 
들깨는 이제사 잎이 넓어진다. 아직 잎 따먹을 때는 안 되었고...
 
고구마줄기가 막막 뻗어나간다. 순을 쳐서 데쳐먹으면 좋은데~
언제 그걸 하나한 따고 앉아있노~ 시간없다.
 
호박잎  된장찌개 좋은 줄 알지만 그것도 시간남는 사람 해먹을 수 있는거~
 
마당 풀이 징그러워 미처 호미도 안 쥔 맨손으로 다 쥐어 뜯어놓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접시꽃은 그예 다시 자빠져 줄기가 꺽어져버렸네.
영차 들어다 도랑가로 내다버렸다. 니 분수를 알아야지~ 이넘아.
 
풀을 깎아준 매실밭은 마치 공원 풀밭 같더라.
이젠 제법 과수원 같애.
 
여유있으면 소나무 밑에 앉아 한시름 덜으련만.
 
복분자 딸나무들은 언제 익으려나~ 아직도 덜 여물었다.
바구니 큰거 가지고 올라갔다가 허탕치고 내려왔다나~
이번 큰비에 익은 넘은 다 떨어지고 이제 겨우 여물락 말락 하는 넘들만 있더라.
 
이웃 밭 고랑들은 풀 하나 없이 깔끔하다.
어찌 저리 부지런할까~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면
풀약 쳐서 깨끗한거였더라... ㅠㅠ
 
울집 밭은 풀 구덩이다. 징글징글하다.
노상 호미를 들고 사는데도 이런데...
 
풀약을 허구헌날 치는 이웃밭 쥔장 때문에
이웃해 있던 울밭 둑 무너졌다.
지들이 고쳐놓겠지. 흠흠.
 
우리는 낫으로 쳐내고 마는데~ 그집은 노상 경계선 까지 풀약을 쳐대더라고.
이번 비에 그만 밭둑이 무너져내려 ...  그집 들깨 심어놓은 밭 한귀퉁이 흙에 묻혀버렸지비~
 
물없던 산도랑가에 물내려가는 소리 들린다.
 
일 끝내고 내려오다 머구 한 소쿠리 베어왔다.
요즘 머구 잎 데쳐서 쌈싸묵으면 쌉싸름하니... 침 돌지.
 
나무꾼 예초기로 풀 베고 내려오는데 마치 옷 입은 채 샤워한 것 같더라.
시원한 샘물 떠다 줬다. 
 
날 더울땐 음료수 뭐 이런거 필요없다.
그저 물이 최고다.
 
땀 한 바가지 물 한 바가지...
 
또 새끼 밴 강냉이는 할매 봉당에서 알짱거린다.
요즘 강냉이 가는 곳마다 쥐가 없다고 동네 할매들이 이뻐라 해서리~~
먹을 거 사냥 안 해도 되는갑더라. 팔자가 늘어졌으~
 
매미소리 쓰르라미 소리... 시끄럽다.
 
어여 일 끝내고 시원한 들마루에 누워 옥수수 뜯으며 별구경이나 했으면...
한여름이라도 쉴 틈이 없다.
 
솔숲너머 야생초밭에 올라가다가 발견한 타래난초...
어느 해 할배 산소를 온통 뒤덮었을 정도로  피어났었더랬는데...
여기도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