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멘붕 제대로...

산골통신 2019. 2. 14. 21:58

아침 일찍부터 미친듯이 바빴다.

약 7시간 걸려 청국장 콩삶아 황토방 아랫목에 앉히고

약 1시간 걸려 닭 3마리 잡아놨다.

 

그 와중에 한 마리 놓치고~

그놈 내일이면 닭집 근처를 배회할테니 그때 잡아넣으면 되고 몰러~

 

자아 산녀는 지금부터 뻗는다 실시!!!

 

............

혼자 북치기 박치기 혼자 일하는 거에는 이력이 났다.

닭도 막 잡아제끼고

콩 한 말 삶아 청국장 앉히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과정 과정이 힘들어서 글치...

 

아침 8시

전날 밤새 콩을 불려놓아 가마솥에 불때기만 하면 되는데

콩물 안 끓어넘친다고 된장 한 주걱 퍼넣었네...

불을 지펴 장작에 불이 붙었을 즈음...

 

문득 드는 생각이

메주는 되지만 청국장에 된장?! 염분이 들어가도 되나?!!!

갑작스레 든 생각에 화들짝 놀라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안된다네...

허걱 허걱 허거걱~

펄쩍 놀라 부랴부랴 가마솥 콩을 다라이에 다시 퍼내어 담아내고

머리속을 있는대로 굴리고 굴려

이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헤맸다.

 

어쩌지 어쩌지?

안절부절 허둥지둥~

그냥 불때서 삶아 메주 만들면 되지만 이미 철이 지나서 메주가 잘 되지 않는단다.

메주로 하기엔 물 건너갔고

청국장으로 하려면 물에 다시 씻어 건져 다시 앉히면 되는데

아차차 마당 샘 수도가 얼어서 물이 안 나온다.

한 두어시간 지나야 나올텐데...

 

이 청국장을 지금 삶아 앉혀야 이번 토요일에 꺼낼 수 있어서

지금 못 삶으면 낭패라...

 

뭐 토요일 시한을 무시해도 되지만 기왕지사 그날 필요하다는 지인의 전갈이라...

에라이~

 

아궁이 앞에 퍼질러앉아

왜 된장을 넣었을꼬... 그냥 찬물 한 양동이 부뚜막에 갖다놓고 퍼얹혀가며 삶으면 되는데 ㅠㅠ

후회를 하면서 대갈통을 두들겨봤지만

 

이래도 대안이 안 나고 저래도 대안이 안 나와...

 

왜 정초부터 되는 일이 없냐고 신세한탄에 성질 짜증 있는대로 내가며

속상해하다가

뭐 그 와중에 똘랑이랑 봉숙이랑 캔 하나씩 까주며

알아듣거나 말거나 짭짭 먹는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푸념하다가...

 

문득 이웃 아지매한테 전화 띠리리~

이러저러해서 청국장을 하려는데 모르고 된장 한 숫갈 넣었슈!!!

이거 그냥 해도 돼요? 안돼요?!!

다짜고짜 물으니

하하~ 웃으며 그정도 염분으로 어찌되지 않는단다...

 

후아아아아아~~~~~~

 

한숨 푹.... 쉬며

다시 가마솥에 콩을 들이붓고

집안으로 들어가 물을 한 통 받아서 들이붓고

콩을 삶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하나...

작년에도 된장 한 숫갈 넣고 했자나...

반은 메주 만들고 반은 청국장 하고...

 

근데 왜 홀라당 까묵고 이 생난리를 친겨!!!

왜 인터넷 레시피만 읽고 멘붕을 일으킨겨?!?!

건망증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자아...

그 바람에 까묵은 1시간 반...

허비했다...

 

부랴부랴 다시 불때기 시작~

물 조절 불 조절 신경 써가며 장장 7시간 불땠다...

오후 3시경 뜰아랫채 황토방 아랫목에 청국장 소쿠리 안착!!!

휴우...

청국장이 잘 띄워지려면 잘 삶아야하고

방안 온도 습도가 잘 맞아야 하는데

잘 삶긴 것 같고

문제는 방안 온도인데

 

지난번 실패해서 노이로제~

방바닥만 뜨겁고 공기가 차가워서 그랬나...

그래서 이번엔 며칠전부터 군불을 지펴놔서 방안을 후끈후끈 달궈놨다.

72시간 띄워야한다는 사람도 있고

48시간만 넘으면 된다는 사람도 있고

35시간이 적정하다는 사람도 있는데

 

모르겠다~

되는대로 해야지...

뭐 일단 시간이 촉박해서 만이틀 48시간은 확보해놨는데

이번 토요일에 열어봐서 덜 띄워졌으면 더 띄워서 보내야지 별 수 없다!!!

내는 몰러~

차일피일 이런저런 일들로 미뤄진지라...

 

망할 된장 한숫갈로 벌어진 멘붕 1시간 반...

이 까마귀고기를 먹은 산녀의 탓이로다...

뉘를 탓을 하리...

 

뭐 그래도 아랫목에 앉힌 청국장 소쿠리를 툭툭 치면서

잘 띄워져라~ 안 되면 너 닭모이 줘버릴겨~

 

흠...

한참을 뻗어있다가...

이번에 산 만화책 들고 뒹굴거리다가

인형알바 조금 하다가~

날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닭잡으러 푸대 울러메고 갔다.

 

장닭을 잡을까? 직무유기 중인 암탉을 잡을까

한참을 닭집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에라~

후레쉬 비춰줄 사람도 없는데 언넘이 언넘인지 우예 알아...

만만한 장닭이나 잡자!!!

 

장닭 다섯마리 있는 작은 닭집에 가서

한 마리 한 마리 잡아 넣는데

아차 한 마리 놓쳤네~

그물이 낡아 틈이 생긴 곳으로 용케 빠져나갔네 ㅠㅠ

에라~

할 수 없고 넌 내일 보자!!!

 

한 마리 마저 잡으려했는데

닭 세마리 잡는 것도 일이라... 냅두고 내려왔다.

 

미리 가마솥에 불 때서 물 데워놓은지라 일은 일사천리

모가지 비틀어 뜨건 물에 털 적셔

모가지 탕탕 닭발 탕탕 자르고 털 뽑고

내장 갈라 해부하고

닭똥집 갈라내고

간이랑 염통 따로 보관하고

그야말로 기계처럼 순식간에 후다다닥~

 

다 해치우고 나니 속이 후련... 몸도 후련...

이제 맘 놓고 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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