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고추밭에서 이틀을 살다...

산골통신 2012. 8. 6. 15:58

 

통구이되기 딱 좋은 날씨...

식전 새벽 4시부터 농사꾼은 일을 나가야한다.

 

근데 이 게글뱅이는 여섯시 땡!! 알람소리에 깨서 주섬주섬 겨나간다.

목이 긴 장화 필수!!! 왜냐... 비얌땜시~~ 오만군데 다 돌아댕기걸랑.

날 시퍼렇게 갈아놓은 조선낫 하나!!!

 

비닐하우스 고추밭엔 물 호스를 대놓고~

양쪽 고랑을 공략한다.

풀이 고추보다 더 키가 클려고 작정을 했으~ 이놈들 두고보자.

낫으로 척척 베어넘기는데.. 이놈의 바랭이들은 땅에 바짝 드러누워서 낫질을 거부한다.

이놈들아... 손구락으로 잡아뜯어서 옆으로 쳐낸다.

쇠비름도 살이 통통 쪄서 옆으로 위로 막 퍼져있다. 이놈들.. 너들이 아무리 몸에 좋고 암에 좋고 어쩌고저쩌고해도

너들은 풀이여... 다 나가!!!  뽑아던져버린다.

참비름도 바글바글 씨를 맺고 키를 키워 대궁이 굵다. 이놈은 낫으로 치면 그대로 넘어가니 밉진 않다.

명아주.. 이놈!! 못된놈.. 미운놈!!!  나무가 되어간다. 아구... 싫다.

낫으로 몇번을 쳐야만 넘어갈까 말까다.

 

풀을 이지경이 되도록 냅둔 우리 인간이 잘못했지 암... ㅠㅠ 반성해야한다.

근 한달여 집을 비운 죄가 이리도 큰 줄은... 해도해도 끝이 없다.

 

풀을 군데군데 산을 만들며 전진 또 전진...

분명 지난번에 풀산을 만들었는데 또 이 지경이 된걸로 봐선...

풀들이 우리 게글뱅이 인간들을 혼내주려고 작심했나보다..

 

시원시원하게 풀을 치고 나니.. 온몸이 마치 소낙비 맞은듯...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내친김에 언덕밭 가생이 풀 공략!!!

한쪽씩 맡아서 쳐낸다. 호박덤불들 걷어서 밀어놓고~

콩대궁들 낫에 치이거나 말거나.. 앞으로 전진 또 전진이다.

이럴때 뱀새끼 선녀 만나면 낫질로 걍 저승행이다. 시방 선녀 눈에 뵈는게 없다.

 

땀이 눈으로 흘러들어가 눈이 안 띄여진다. 앞이 안 뵌다.

그래도 죽어라 풀을 벤다.

여긴 예초기 못 들어온다. 돌담이 있던 자리라.... 돌투성이다. 예초기 칼날 다 작살난다.

천상 낫으로 손으로 해치워야 한다.

 

오라비... 거들러왔다가... 아이구야~ 농사 못 짓겠다. 죽겠다.

풀들이 인간들을 떠매어갈라한다.

하소연 푸념 온통 하고 갔다.

그래도 언덕밭 풀 다 쳐내고 고추밭둑 다 쳐내고~ 오늘 일 마이 거들었다카이~

 

노지 고추들은 하냥 물이 고픈가보더라...

노지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매일 물 주지 않을꺼면 물을 아예 주지 말라하더라... 더 가물탄다고...

지나가는 오라비 하나가...

해서 걍 물을 주는 시늉을 하다 걍 들어왔다.

 

거름터미위로 애호박 두 개가 이쁘게 달려있다.

숨어있는 호박들은 벌써 공만치 커졌더라~

 

땡볕이다. 시계를 보이.. 벌써..

아이구 배고파라..

 

 

 

이제 일 못한다. 해올라와서 이슬 마르면... 인간들은 집으로 겨들어가야한다.

 

텃밭 비닐하우스 헛고랑에 희득이할매가 상추씨를 한 봉지 뿌려두셨다.

오며가며 솎아먹으라고...

어제오늘 계속 상추쌈이다.

 

어제부터인가... 밤기운이 달라졌다. 서늘하다...

역시 입추!!! 절기는 못 속인다.

새벽에 은근 추웠던지... 잠결에 이불을 덮고 있더라...

 

산골에 초상이 났다.

이젠 상여도 안 메고... 멜 사람이 없다카던가... 아님 마을에 폐끼치기 싫어서라던가... 몰겠다.

왜냐면 상여를 멜 젊은네가 다 대처에 있으니... 오라하기가 미안했다던가...

시내 장례식장에서 하고 그대로 화장장으로 간다더라...

이유를 물으니...

 

나중에 산소 벌초할 후손이 없다고... 예초기 멜 후손이 당대엔 있어도 그 후대엔 없다고...

그래서 화장해서.. 수목장 비슷하게 한다더라... 그집 아들들이 넷이나 되는데... ㅠㅠ

그래도 그 소리를 듣고 다들... 아무 소리 안 하더라... 끄덕끄덕.. 남의 일이 아니더라 이거지..

 

묵어지는 산소들이 많아지고... 묵밭 묵논이 늘어난다.

빈집도 늘어나고.. 남의 일이 아니다.

그 아지매.. 이제 농사 어찌할껀고... 여쭈었더니..

이왕 심어놓은건 올해 어찌어찌 거두고... 내년부턴 농사 안 한다고...

 

우리도 남말 할 때가 아니다.

저거 저거 텃밭도 풀밭을 만들어놓고 뭐라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카이...

 

 

이제 몇년 후면 이 마을 어찌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