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뿌렸다. 어젠 여름 소낙비수준이었다네~
오늘은 그런대로 비가 그치고 흐린 정도... 일하기는 좀 그렇고 그런날씨~
이런 날 푸지게 낮잠 퍼자긴 그저 그만...
산골사람들 밭에 거름내야 하는데 땅이 질어 못 들어간다나~ 해서 집집마다 거름더미들이 그대로... 쳐무져져 있다.
추운 겨울엔 너무 춥고 땅 얼어 못 하고~ 그 다음엔 눈 내려 못 하고 땅 녹고 눈 녹은 다음엔 비가 내려 못 하고~ 이래저래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단다.
우린 다행히도~ 큰 추위 닥치기 전~ 조금만 추울 때 그것도 사람일손 넉넉할 때 해치웠으니 망정이지~
우리도 그때 놓쳤으면 손도 못 대고 겨울 다 보냈을껴. 암만...
얼매나 일 잘쳤는지 몰러~ 그때 다 늦게 김장할 때였는데...
이래서 일은 미루면 큰 탈나는겨...
할매는 지금도 그때 이야기를 하신다. 그때 얼매나 일 잘 했노~ 잘 했지.
이웃들 지금 일 못 해서 안달복달이다. 우린 그때 참 잘했다.
내일 날이 어떨라나.. 걱정이다. 오늘까지 비오고 내일은 안 온다하니~ 기대를 해봐야겠다.
감나무 매실나무에 깍지벌레 허옇게 들러붙어 약 한 번 쳐야하걸랑.
넘들은 감나무에다 일년에 대여섯 번 약을 친다네? 그래야 가을에 감을 온전히 얻어먹을 수 있댜... 안 그러면 다 떨어지고 벌레먹고 썩어서 본전도 못 건진댜...
뭐 약 안 치는 우리가 그짝이지...
해서 우리도 한번은 치기로 했다.
그기 겨울눈 터지기 전에 쳐야 한다고 해서 2월 안에 치기로 했는데..
허구헌날 눈이 뿌리고 비오고 바람불고 춥고 날씨가 이리 난리를 치니~
언제 일을 할 수가 없단 말이지..
우짜노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오늘 비 그친다니 내일 치자. 더는 미루면 꽃눈 터진다. 안돼.
그런데 오늘 비온다... 에궁. 어제까지 온대매...
모레도 비 온대매~~ 우짜라고~~~
내일 맑아진다는 일기예보만 철석같이 믿고 약통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아침... 솔숲너머 야생초밭에 올라갔다. 바람 한점 없다.
날만 흐리지 않았으면 마치 봄날씨 같은...
나무꾼은 매실나무 하나하나... 상처입지 않았나... 벌레먹지 않았나... 둘러보고...
선녀는 야생초밭에 봄소식이 있나... 살펴보러갔다.
두메부추... 가장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산마늘.. 식구를 많이 늘려놓았네... 잡초들 속에서도 씩씩하게들 자라고 있었다.
섬초롱은 좀 늦은 녀석들이라 소식이 아직 없고...
기린초가 불쑥 불쑥 돋아나있었다. 그 외 다른 녀석들은 잠에서 깨지 않았는지 안 보인다.
그제 비가 많이 온 탓으로 웅덩이에 물이 잔뜩 고여 있고 계속해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작은 도랑에 가득 차 있었다.
꼬맹이~ 삽 들고 괭이 들고 호미 들고... 물길을 잡아내어 웅덩이로 물을 모은다.
지딴엔 연못을 만들고 싶은가 보다.
전에전에 야생초밭 옆에 작은 비닐집을 지으려고 철골조를 가져다 놓았었는데..
이리 땅이 녹고 푸실푸실하니 우리 한번 지어볼까나~ 마침 마음을 먹고 일을 시작했다.
농기구 보관하는 헛간으로도 써도 되고~ 새참 먹는 그늘막도 되고... 이런저런 용도로 쓸겸해서... 조그마한 비닐집 하나 만들어놓자구...
소나무가 많은 산 밑이라 소나무 솔씨가 떨어져 밭 여기저기에 애송들이 넘쳐난다.
나중에 풀들 등쌀에 예초기 제초기 칼날을 피해갈 지 모르겠다. 아직 어린넘들은
풀섶에서 잘 뵈지도 않아 예초기 휘두를 때 미처 못 봐내는데... 어쩌누.
산초나무들도 씨를 많이 퍼트리고 찔레꽃 산딸기 가시덤불도 그 번식률이 엄청나다.
토토로 꼬맹이는 괭이질 하느라 온몸이 흙투성이... 정신없이 일을 하더라.
그렇게도 좋을까.
나무꾼이 삽질하다 나온 돌들을 던져주니 연못 가생이에 놓는다고 다 집어갔다.
비닐집을 만들려면 둥근 철골조와 일자 철골조 철골을 고정시키는 고리와 비닐 비닐을 고정시키는 집게, 끈, 말뚝 그리고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이 많이 필요하다.
집 헛간에 전에 쓰던거 많이 있으니 그거 다 가져다 쓰면 된다.
농사꾼 집에는 별게 다 있어야 한다. 조막만한 집하나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연장은
다 있다고 봐도 된다.
솔숲을 돌아다닌다. 공기가 참 맑다. 소나무 밑 바위 위에 걸터앉아 좀 쉰다.
일 하러 이렇게 산밑 밭에 올라오면 다시 내려가기가 싫다. 참 평온하고... 잔잔하다.
그냥 이렇게... 이곳에서 살림했으면 싶다.
매실밭 여기저기에 두더지란 넘이 흙을 파뒤집어 놓았다.
땅속을 겨댕기다가 불쑥 바깥 세상이 구경하고 싶어졌나~~ 에궁....
다래덩굴이 쭉쭉 뻗어나간다. 감고 겨올라가라고 설치해준 사다리도 부족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란다. 그 옆의 으름덩굴도 만만찮고... 오미자만 겨우겨우 존재만 드러내고 살고 있다. 올해는 거름도 넉넉히 뿌려줬으니 잘 자랄꺼야.
복분자덩굴은 참 무시무시하다. 걔들은 전지를 해다주면 그 잔가지들을 어디 멀리 내다버려야 한다. 그냥 내버려뒀다간 그만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려 그대로 살아버린다니까... 세상에
오늘도 몇뿌리나 뽑아내야 했다구. 이넘들아~ 이 자리는 너들 자리가 아냐.
이곳은 개미취터란 말야. 저리 안가?
다음부턴 조심해야겠어. 아깝다고 내버려뒀다간 이곳 전부 복분자천지가 되버리겠다니까.
체리나무하고 마가목은 어째 자라는 속도가 여엉 맘에 안 들어~ 꽃피는 것도 아니고 열매는 더더욱 아니고... 혹시 딴 나무 잘 못 심은 거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뭐 나무는 십년대계라 했으니 기다려볼 밖에..
일을 하다보면 금새 배가 꺼진다.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하는가봐.
속이 더부룩하던 것이 꾀병같이 없어졌다.
그간 춥다고 일 안 하고 비온다고 놀고~ 눈 내린다고 들앉아 책이나 읽고~ 그랬더니
몸이 아주 아우성을 친다. 슬슬 봄기운이 도니 몸 스스로도 안달을 하는가벼~
올해 겨울엔 눈비가 잦았다. 제때 거름을 못 낼 정도로... 그랬단다.
올해 농사는 물 걱정 안 해도 좋을라나? 논마다 물이 질퍽질퍽하다.
할매가 묵을 하셨다. 메밀계피를 빻아놓으셨는데... 메밀은 설을 넘기면 맛이 없다나..
묵이 잘 안된다고도 한다.
해서 설 전에 많이 해먹고 대보름날 마지막으로 해먹기도 한단다.
메밀묵은 추운 겨울에 먹어야만 제맛을 내는 별미중 별미지..
왜 설 쇠면 묵이 잘 안되는 걸까? 허긴 메밀씨앗채로 있는 것은 묵어도 되긴한다만~
가루를 내면 잘 안 되는 이유는... 아마도 타당한 이유가 있을게다. 지들 나름대로.
이게 마지막이라면서 메밀빻은 걸 꺼내 물을 넣고 거르신다.
선녀보고 걸러보라고 하셨는데.. 급한 성격탓에 할매 못 기다리시고...
그냥 손 걷어부치시고 막 거르시네...
메밀은 그 미끌미끌한 성질이 자칫 잘못하면 물을 많이 잡아먹을 수 있는데
처음부터 물을 많이 잡고 묵을 거르면 질퍽한 풀같은 묵이 되어버린다.
물을 조금씩 조금씩... 넣어서 천천히 주물러내야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한번에 걸러지지도 않고... 꼭 여러번... 치대야만 되는 이노무 메밀~
메밀묵가루 가져가서 한번해먹어봐라~ 하면서 메누리한테 한자루 주셨댜~
헌데 그 며느리... 한번도 안 해묵고 도로 얌전히 가져왔다나... ㅋㅋ
그래도 대처에서 음식물 쓰레기로 안 버리고 도로 가져다 놓은 성의가 하도 이뻐
할매는 암소리도 안 하셨다나~
그 메누리.. 메밀묵 거르는 거 엄청 까탈시럽고 성가시다는 걸 아는게야~ ㅎㅎㅎ
사실 선녀도 메밀묵 거르는거 엄청 싫어라 하걸랑. 먹는건 억수로 좋아라해도 말이지.
잔심부름을 해가며 메밀묵 거르는 걸 도왔다. 처음엔 미지근한 물로 치대다가~ 나중엔 찬물로 해야 좋댜~
걸죽한 첫물을 내고 마지막으로 행궈 내면서 물을 좀 잡으면 두 종류의 거른 묵물이 나온다.
첫물을 갖고 묵이 되지 않으면 그냥 하고 좀 되다 싶으면 두 번째 물을 섞어가며 끓여야 하기 때문에 첫물 말고도 두 번째 세 번째 물을 장만해둬야 한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을 달군다. 달군 다음에 들기름을 낙낙히 둘러서 치지직 소리가 나면.. 그때 걸죽한 첫물을 넣는다.
불을 찬찬히 입시에 때야한다. 깊숙이 때면 고래로 불이 들어가기 때문에 불때는 기술이 있어야 한단다.
할매가 묵을 저으시고 선녀가 불을 땐다. 구경하던 꼬맹이보고 불을 때라고 할랬다가 그만뒀다. 묵이란 거이 불을 잘 때야 한 대여~
선녀 불때는 꼬락서니를 보시더니만~ 그예 못 참으시고 할매 왈:
옛날엔 시집보낼려면 불때는 일도 시키고 소 마구도 치우게 하고 이런저런 일을 다 시키고 나서야 시집을 보낸다나 어쨌다나~ ㅋㅋㅋ
묵이 설설 끓는다. 나무주걱으로 골고루 저어줘야만 묵이 눌지 않고 수제비도 안 지고 잘 된댜. 달군 솥에 들기름을 넉넉히 둘렀기 때문에 타진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저어야만 잘 된다고 한다.
불을 처음엔 넉넉히 쳐때다가 슬슬 줄여나간다. 불땀 좋은 재가 많이 쌓이기 때문에
마지막 뜸들이는 불기는 그 잿불로 가능하기 때문에 막판엔 불을 때지 말아야 한다.
메밀묵 쑬때는 장작을 때지 않는다. 그냥 콩쪄배기, 깨쪄배기 고춧단 등 이런저런 잡동사니 밭에서 나온 것들로 때면 참 좋다.
이번 묵 쑬땐 질금콩단하고 참깻단만 갖고 땠다. 불땀도 좋고 화력도 아주 좋지.
글씨 몇 단 안 때고도 그 가마솥 묵이 다 끓었으니~ ㅎㅎㅎ
양재기에 뜸이 다 들은 김이 설설 오르는 묵을 들이붓는다. 모양이 반듯하게 좋게 나오게 하려면 잘 부어야 혀~ 큰 양푼으로 두 개 부어놓고 묵 누룽지를 긁는다.
묵 누룽지는 금방 긁어야지 조금 냅두면 들러붙어버려서 애묵는다.
불을 살짝 때서 누룽지가 들리게끔 한다음 박박 긁어내야한다.
매끈하게 들려진 묵누룽지를 따로 그릇에 담아 꼬들꼬들 식히면 그거 참 너무 맛있다.
모양좋고 때깔좋은 네모난 묵은 쳐다보지도 않고 묵 누룽지가 들어있는 가마솥을 차지하려고 쌈도 많이 했었지 아마? 이게 언제 얘기여? 시방?
옛날에 밍눔이네 집이 묵장사를 했었다는데 할매 둘째딸내미가 그 묵누룽지가 먹고싶어 몸살을 댔었더라나~ 할매 가끔가다 이런 이야기도 막 하신다.
옛날 밍눔이네는 두부장사도 했었고 콩나물장사도 했었는데~ 모두 집에서 키우고 만든 거였어.
허긴 내도 어릴적 기억에 두부산다고 콩 한 되 갖고 쫄래쫄래 간 적 있었지 아마? 그땐 돈을 갖고 가진 않았고 물물교환을 했었던 것 같애...
묵을 묵판에 부어놓고 묵누룽지 득득 긁어 갖고 들어와 둘러앉아서 한바탕 먹어제꼈다.
양념장을 맛있게 만들라고 하시는 할매~ 묵은 양념장이 맛있어야 한다고 노상 주장하신다.
양념 아끼지 말고 넣으라시네~ ㅎㅎㅎ 헛간에 가서 대파 몇포기 꺼내오고 마늘 까서 찧고
깨소금 참기름 고춧가루 넉넉히 넣고 양념간장을 만들어놓으니 군침이 막 돈다.
그릇째로 양념장 발라 먹어치운다.
요 꼬맹이좀 보소. 그릇을 통째로 가져가서 안 주고 다 먹어버리네그랴.
이넘이 뜨신 묵도 좋아하고 묵 누룽지도 좋아하고 다 좋아해. 희한한 넘이여...
원래 애들은 묵 안 좋아한다던데... 얘는 먹을거라면 다 좋아라혀~
묵 먹는 애라고 할매가 참 이뻐라 하신다. 당신이랑 먹성이 닮았다고.
저녁으로 묵 몇사발 먹고 치웠다. 묵이 다이어트 식품이래매~
옛날엔 구황작물로 없는 식량에 보태먹는 거였다는데... 요샌 두루두루 연구를 해대서 인기식품이랴...
옛날 용궁장에 갈 때 장에서 묵밥 한그릇 먹으면 배가 불렀다네...
묵을 채쳐서 뜨신 국물 넣고 튀해서 순대국 같은 걸 넣어서 주면 그거만치 맛있는 것이 없었대여~ 옛날에 뭐 먹을 거이 있었나.. 그런거 먹고 살았지.. 하신다.
요샌 다들 배가 불러 묵이고 뭐고 들어갈 배가 없다나 어쨌다나~ 속살이 쪄서 다들 먹는 것이 아쉽지가 않은 세상이라 그렇다나...
'산골통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이 오는 증거... (0) | 2010.03.10 |
---|---|
[산골통신] 우수 경칩 지나면... (0) | 2010.03.09 |
[산골통신] 눈 내린 산골짝엔... (0) | 2010.01.18 |
[산골통신] 너무나 늦어버린 김장... (0) | 2009.12.28 |
[산골통신] 닥치는대로 효소를... (0) | 2009.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