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켠 보일러실을 보수하면서 좀 넓혀 유리 샤시문을 달아냈다. 그 바람에 남향인 너른 방같은게 생겼고 집에서 안쓰는 헌 소파와 원형 탁자를 갖다놨지.
햇살이 너무 잘 들어와서 챙모자를 써야만 앉아있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도 햇살을 살짝 피해 돌아앉아있다.
원형탁자라 그게 가능해서 좋다.
올 겨울 읽을 책들을 마구 쌓아놓고 땡기는대로 읽고 있다.
요즘 세계사편력 인도 총리였던 네루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진 책인데 제법 읽을만하다. 열세살남짓한 여자아이에게 쓴 아버지의 편지 형식이라 읽어내기가 쉽다.
다만 그당시 인도인의 시각에 비친 세계사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내년 봄 아쉬람터 연못에 띄울 부레옥잠을 월동시키는 중이다. 항아리뚜껑 수반 세 군데에서 키우고 있다. 이 온실아닌 온실이 아주 제격이다. 이만치 키우면 아쉬람터 그 넓은 연못을 그득 채울 수 있다. 번식력이 어마무시하거든~ 작년에도 그리 했다.
애기범부채 화분 세개를 들여놨다. 얘는 노지에서 월동이 안되고 다 얼어죽는다. 왕겨로 덮어주고 비닐로 덮고 어쩌고 해도 안되더라~
이 겨울에 이쁜 초록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앉아있다. 모자를 쓰지 않으면 눈도 못 뜰 정도다.
집 뒤 작은 텃밭엔 아직 초록이 무성하다.
상추들은 비닐로 씌워놨지만 언제까지 버틸런지 모르겠다.
큰 비닐하우스 안에는 많은 식구들이 살고있는데 고추가 그만 잎이 얼어서 축 늘어졌더라. 역시 거기까지인가벼~
들냥이들이 들어가는 틈새를 대충 다 막아놓긴 했는데 갸들은 어찌해서든 들어갈기라…
어느정도는 타협을 해야겠지.
마당냥이들과 들냥이들이 주객이 전도됐다.
들냥이들이 개집을 차지하고 살고 마당냥이들이 길건너 엄니네집 마당으로 밀려났다.
영역싸움을 했던지 까망이 얼굴이 온통 상처투성이더라… 그리고 다른 까망이 한 마리가 안 보이고~
봉덕이는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거엔 관심없고~ 다만 지 영역 사수만 하더라.
개와 고양이들이 서로 배려와 존중이 아니라 살벌하다면 살벌한 영역싸움을 수시로 은근히 벌리고 있더라…
지들끼리는 지켜야 할 어떤 규칙이 있는듯 하더라.
이른 아침 마루 문을 열면 저 멀리 마당 끝에서 우르르 대여섯 마리 들냥이들이 달려온다.
산녀를 반기는게 아니라 산녀가 곧 갖고 올 밥바가지를 고대하는 거지.
그리고 삽작거리엔 마당냥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쟈들도 밥을 기다리는 거지.
이게 그동안 나름 학습이 된거라~
밥 한 바가지가 쟈들한테는 하루 식량이다.
모자라는 건 사냥해서 때우고 사냥을 못하면 그냥 굶는듯…
샘가에 물그릇을 놓아뒀다.
요즘 늘 얼어있다. 아침마다 돌로 쳐 깨준다.
냥이들은 산녀가 늘 밥과 물을 준비해준다는 걸 안다.
와서 엉겨붙지는 않아도 나름 거리를 두고 살아도 쟈들은 알더라.
저 털없는 큰 고양이가 자기들한테 무심하나 유심한 호의를 갖고 있다는 걸…
닭집에 모이와 물을 챙겨주고 산책에 나선다.
닭집을 옮기고나서부터 산책길이 좀 수월해졌다. 닭집에서부터 바로 이어지는 뒷골로 한바퀴 돌고 아쉬람터 연못을 한바퀴 돌고 토꾸바 약샘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 한시간 안되는 거리다.
내처 저 아래 냇가 둑까지 갔다오면 좋고 아니면 이어서 산으로 올라갔다오면 더 좋고…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대로 오르락 내리락한다.
오늘은 바람이 덜 불고 살짝 흐리다.
바깥일 하긴 좋은 날씨이긴 하나 그닥 시급한 일이 없다.
비닐하우스 안 식구들에게 물을 흠뻑 줬다.
며칠에 한번씩 이리 줘야 이 겨울을 견딘다.
산골살이는 겉으로 보기엔 초라하나 산녀에겐 더할나위없이 안온한 보금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