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하루종일 심고 심고 또 심다.

산골통신 2025. 4. 24. 13:20

고추모종 500포기가 왔다.
마을에서 아지매들이 항상 모종을 키워서 나누는데 올해부터는 못 키운다고 면내 종묘상에 주문한다고 하네…그래 산녀네도 같이 주문해서 같이 받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채소 모종들도 한꺼번에 우르르 도착했다.
열댓가지 모종들을 해마다 주문하는 농장에 한꺼번에 주문해서 받았다.
오일장에 가서 사면 되는데 그걸 다 들고 올 수가 없어서리.. 나무꾼하고 일정이 항상 안 맞아서리…
올해는 까이꺼 인터넷으로 아는 농장에 몽땅주문해버렸다.
하여튼 그래서 한꺼번에 도착이 되어 모종 부자가 되어버렸네~

그걸 고추모종하고 호박모종만 빼고 어제오늘 다 심어버렸다.
손과 발에 발동기가 달린듯 후다닥 해치웠다.
성질머리가 그냥 두고는 못 보는지라…
몸이 고생이다 ㅎㅎ

오이 스무 포기 청겨자 적겨자 각 열 포기
가지 다섯 포기에 고추모종에 덤으로 온 두 포기 더해서 일곱 포기~ 올해 저 가지 누가 다 묵을꺼나~
바질 스무포기~ 잎을 따먹기도 하지만 페스토 만들고 가루 만들려고~
일당귀 열 포기~  큰 토마토 스무 포기 방울토마토 열 포기~ 등등등
여기저기 구석구석 심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라고 있던 나물 모종들도 꺼내 제자리 찾아 심어주고~
그니까 하루종일 심는 일만 했다는 거~

오늘 식전에 아침거리 쌈채소 한 소쿠리 뜯어서 들어가려는데 저짝 모퉁이 태국아줌마 지나가시네~ 밭에 일하러 가시나…
국화 삽목한 거 보고 무슨 꽃이냐 묻고 산녀 손에 들린 나물들을 보고 눈이 동그레~
엄청 부러워하더라.
그래 그냥 무심코 웃고 보냈는데 아차…
좀 줄걸~ 꼭 뒤늦게 생각이 나는거라…

아침 먹고 어제 못다심은 모종들 마저 심고 물 주고 묶고 한참 하고 있는데 일 마치고 지나가더라고~
그래 반가워서 얼른 손짓해 불렀지!
상추 필요하냐고 필요한만치 뜯어가라고~
텃밭으로 불러들였다.
상추 한참 뜯고 있는걸 보고서 마침 미나리랑 참나물 베어놓은 것이 있어서 이거 좋아하느냐고 물으니 엄청 좋아한다네~

그래서 한아름씩 안겨줬다!!! 앞으로 필요하면  더 뜯어가라고 이야기해줬다.
”행복해요!!!“
라고 하더라.
그래서 산녀도 그만 헤벌쭉~ 행복해졌다.

십년도 훨씬 더 전에 태국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가 나이많은 상처한 산골농부남편하고 재혼해서 사는데 그 상처한 전처가 산녀 친구다.
그 친구 묘가 울밭에서 건너다 보인다.
아직도 한국말이 어눌해서 마을 아지매들하고도 어울리지 못하고 조용히 산다.
울집 앞을 지나가다 만나면 항상 먼저 인사를 하고 산녀를 참 이쁘다고 해준다.
얼굴이 하얀 걸 소원해서 온통 얼굴을 가리고 눈만 빼꼼 내놓고 산다.
꽃도 좋아하는듯 보이니 나중에 뭐라도 줘야겠다.

고추모종은 오늘 해거름이나 내일 식전에 심어야겠다.
호박 모종은 심을 구덩이를 진작에 파놓았어야 했는데 나무꾼이 못 올 줄 내 알았나…
일본에서 손님들이 온다고 일터를 못 비운다네.
그래 일단 호박은 내 알아서 하겠다고 했지.
몰러… 삽질인생이 어디 가나~

수세미 모종을 닭집 지붕으로 올리려고 닭집 가생이로 줄줄이 심었다.
그러면 여름에 닭들도 그늘져서 시원하고 수세미도 햇볕 맘껏 받고 좋지.

곰취랑 아스파라거스랑 눈개승마도 더 보충해서 심었다.
먹을 입은 자꾸 줄어도 철따라 먹어야 할 건 또 먹어야 하는지라~
요즘 아스파라거스가 한줌씩 꼭 나온다.
모아뒀다가 작은아이 오면 해먹으라고 준다.
다른 아이들은 오면 주고 안 오면 못 얻어묵는다.

산나물철이 한바탕 지나갔다.
미나리도 다음주 마저 베면 끝난다.
참나물도 벌써 꽃대궁이 올라오던걸~
잠시잠깐이다. 이때 부지런을 잘! 떨어야 일년 먹을 나물들이 생긴다.

참새들이 그 조그만 부리에 둥지 지을 지푸라기 하나씩 물고 다닌다.
다들 열심히 산다.

<그냥>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왜 이렇게 지었을까 궁금했는데
지금은 왜 그렇게 사냐 물으면  <그냥>  이라고 대답할까…
열심히 사는 것도 무기력하게 사는 것도
불행을 견디는 것도 행복을 느끼는 것도
<그냥> 이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