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신...
생전 할매 계셨으면 당신 생신도 모른채 그냥 지나치셨을...
뭐 자식 생일도 무덤덤하게 보내셨던 분인지라 우리 형제들은 생일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살지 않았더랬다.
그제가 작은 오라비 생일이고 오늘이 할매 생신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생일은 늘 까먹지 않고 새기고 지나간다.
우연찮게도 다행히 전화통화가 되어 목소리는 들었네...
자유로운 영혼... 지금 어느 골짝 캠핑 중이신고...
비가 억수로 온다는데...
헐벗은 사람 만나면 신었던 신발 옷가지 죄다 벗어주고 오는 바람에 할매한테 야단도 숱하게 맞았지.
군 제대하면서도 후임이 입고 있는 군복이 낡아 자신의 것을 벗어주고 오는 바람에 할매가 기맥혀...
웬 거지가 오더라나... 그 군복을 꿰매고 수선해주시면서 혀를 끌끌...
워낙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머리가 좋아 돈버는 재주는 좀 있어서 늘 주머니에 많던 적던 돈은 있었는데 길가다 배고픈 이 만나면 호주머니 탈탈 털어 주고 자신은 배 쫄쫄 굶고 다니더라나...
그러니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
세상은 맑지 않았지...
뉘 탓을 하랴...
오늘 할매 생신이시다...
어제 산소가서 둘러보니 맷돼지 다녀간 흔적은 없는데 자잘한 풀들이 무성하네...
추석 앞두고 벌초하겠지.
가지고 간 낫으로 좀 칠까 하다 뭐 한 흔적도 안 날것 같아 그만뒀다.
할매 빈집은 늘 불을 밝혀둔다.
왠지 어두우면 맘이 먹먹하고 답답해...
불이라도 밝혀놓아야...
9월이다...
아직 음력으론 7월이지만...
어정 7월 건들 8월 지나면 동동9월 오겠지.
들에 식전부터 예초기 소리 요란하다.
벌초시기다.
아직 크게 바쁜 일이 없어 괜히 어정어정거리고 다닌다.
비는 그치고...밭흙은 아직 무르다.
쪽파씨 꺼내놓고 다듬고 있고
달랑무씨앗이랑 시금치씨앗 구해와야한다.
무 배추는 잘 자라고 있고
아욱은 한 번 씨 뿌려둔 곳에 해마다 싹이 터서 올라온다.
고추는 3번째 땄고
아직 큰 병이 오지 않아 그럭저럭 먹을 건 나올듯하다.
더덕은 무시무시한 폭염에 덤불이 다 타죽었다. 몰라 그 뿌리는 살아있으려나...
호박도 풀더미 속에 어찌 살아있는지...
이번 여름은 뭐하나 대충 넘어가는 법 없이 그 흔적이 어지간하다.
뭐를 할꼬... 궁리만 하면서 일하러 나가지도 않는다.
마루문 열고 봉당에 나서면 봉숙이 새끼 네 마리가 우르르 쫓아와 발목에 앵기고 타고 오른다.
내가 니 에미냐?!
어제 길가다 봉숙이년을 만났다. 호통을 쳐봤지만 들은 척도 안하고 지 갈길 가더라...
어미를 일찍 잃은 삼색이 새끼 한 마리가 봉숙이새끼들이랑 같이 살더라...
주먹만한 놈이 어쩌다 어미랑 떨어졌는지 몰라도
왜 울 집에 들어와 사는겨?!
아랫채 툇마루를 점령하고 사는데... 그 옆 흔들그네는 갸들 놀이터다.
어쩌다 흔들그네 좀 앉아보려면 한바탕 청소를 해야한다.
그 흙묻은 발로 으으...
저놈들 만지면 안돼!!! 벼룩이 있는지 온몸이 따갑고 가렵더라고...
자꾸 앵기고 덤비는데 요새 쟈들 피해댕기는 게 일이다 ㅠㅠ
이제 비 그쳤으니 할 일 찾아 해야하는데
그간 너무 편히 쉬었나... 몸이 삐그덕 거리네...
닭집은 여전하나 여전하지 않다.
닭 세 마리가 한 둥지에 알 스무여남은 개를 갖고 품고 앉았는데 마침 자리잡은 곳이 병아리 육아실 둥지라...
물이랑 모이통이랑 새로 들여놔 줬다.
알낳는 둥지에도 두 마리가 알도 없이 품고 앉았는데
쟈들은 오늘 밤에 병아리육아실로 들어다 놔야겠다.
오늘 낳는 알 몇개 품에 넣어주면 별말 안 할거야.
더위가 가셨다고 이제 슬슬 알도 낳고 품고 한다.
오랜만의 파란 하늘 흰 구름이라 참 낯설더라 ㅎㅎ
비온 뒤끝 동미산 아름드리 소나무 쓰러지고...
마당 방티연못엔 물이 그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