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 향이란
미루고 미루다
드뎌 청국장 만들었다.
곳간에 콩자루 영차 들고와서 열되 퍼서 한말 콩을 다라이에 들이붓고
착착 차락처락 씻는다.
콩선별기에서 골라낸 콩이라 깨끗하다. 먼지만 씻어내면 될듯!
희득이할매께서 참 알뜰히 농사지으신 거다.
가마솥에 물 한 양동이 반 붓고
한 말 콩을 들이부었다. 물 양은 손목이 충분히 잠길 정도!
거기서 좀 맘이 안 놓여 한 바가지 더 부었다.
참나무장작을 넣고
불쏘시개로 소나무갈비를 한 줌 넣고 불을 붙이니 화르륵~
잘 타오르고 금새 나무에 옮겨 붙는다.
나무꾼이랑 딸래미랑 산에 가서 깔끼로 갈비를 긁어 왕겨푸대에 그득그득 네 푸대를 담아왔다.
이젠 아무도 그 산에 나무하는 이 없고 갈비도 긁어가는 이 없다.
다아 우리꺼!
헌데 산녀가 닥달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 해 와 ㅠㅠㅠ
장작도 그제서야 다 잘라줬다나...
그동안 큰 통나무 잘라 쓰느라고 애묵었어!!!
이제 나무꾼 좀 한가해지려나... 일을 좀 하나하나 해주네.
지난번 큰놈이 도끼질로 패 준 장작을 참 요긴하게 땠다.
그 장작으로 청국장을 쑨다.
아궁이 앞에 퍼질러 앉아 불 화력 조절을 해 줘야 한다.
콩은 일정한 온도로 잘 삶아야 맛이 좋거든!
꺼졌다 붙었다 하면 좀 그랴...
이거 하루 꼬박 일거리인데
이번 겨우내내 맡은 일거리 오늘 분량을 해야하는데 어쩌누...
궁리 끝에
아궁이옆 한 켠 나무들 치우고 밥상 하나 갖다놓고
노트북을 들고왔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아궁이 가마솥 콩을 지켜야하니 이 방법 밖엔 없네!
딸래미가 엄마꼴을 보더니 사진 한 방 찍었다!
디지털 노마드 라나...
세상천지에 엄마같은 사람 없단다 ㅋㅋㅋ
뭐 어때!!!
콩도 삶고 돈일도 하고~
간간이 불 쬐면서 장작 몇 개 처넣고 끓어넘치지 않나 살피고
노트북으로 일거리 처리하고 막 그런다...
그러면서 또 궁리 시작...
이 좁아터진 아궁이 앞을 널찍히 터서 야외 마루로 만들고
지붕을 덮어 처마를 내고
앞을 비닐이나 샤시문으로 막으면
아궁이가 벽난로가 되고
야외 거실이 되지 않으려나...
여기에 내 작업용 탁자 갖다놓고 일도 하고 책도 보고 멍도 때리고...
들냥이들 날 추운데 들어와 놀라고 하고...
음...
아궁이 잿불 숯불에 갈치도 궈 먹고...
그 말 들은 나무꾼... 즉시 실행 가능하다면서 연구를 하기 시작!!!
부창부수~ 일거리 장만하는덴 일가견이 있다ㅠㅠㅠ
거기에 더 나아가 정자까지 만들잔다 ㅠㅠㅠ
재주가 꽝인 이 부부는...
머릿속으로만 열심히 집도 짓고 정자도 짓고 뭐 그런다...
그냘 해질녘 콩은 잘 삶아졌고
저녁먹는 동안 숯불만 남은 상태로 뜸도 잘 들이고
가마솥을 여는데 와... 구수하고 달달한 냄새!!! 지긴다!!!
예감이 좋네!!!
커다란 소쿠리에 광목천을 깔고 콩을 부어 담은 다음 짚뭉치를 여기저기 꽂고 다시 천으로 잘 싸 차곡차곡 덮었다.
황토구들방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소쿠리를 놓고
솜이불 얇은 걸로 일차 덮고
두꺼운 솜이불로 척척 덮어놨다!!!
앞으로 사흘...
아궁이 불을 하루 한 차례씩 때야 한다!
그날 밤 자는데 더워 죽는 줄 알았네~
웃목으로 겨올라가 이불도 못 덮고 자야했다.
삶은 콩을 집어먹어보니 달달하고 고소해...
향도 참 좋고...
어이구~ 좋아라...
조금 콩을 덜어내서 절구통에 찔어 척척 작은 메주덩이 여덟개를 만들어봤다.
잘 말려서 메주가루 만들어 고추장 만드는데 넣으려고~
짚을 깔고 그 위에 매주덩이를 나란히 놓고 아침저녁으로 뒤집어줘가며 말린다.
꾸덕꾸덕해지면 그대로 말려도 된다.
다음날 그 다음날...
황토방 안에 들어서면 향이 진동을 한다.
뭐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우리식구들은 방 안에 들어서면 탄성을 지른다.
메주향이 이렇게 좋았어?
이런거였어? 놀랍다!!!
꾸덕해진 메주를 조금 떼어 먹어보니 달달해...
음...
올해 장 맛이 좋겠군!!!
이 황토방 안에 사는 균이 참 착하고 좋은 애들인가봐!!!
사흘밤은 아랫목에서 띄운 청국장이 궁금해
열어보니 자알 띄워졌다. 그냥 눈으로만 봐도!!!
절구통이랑 공이 갖다놓고
청국장을 찧는다.
하도 미끌거리고 점액질이 대단해서 산녀가 하다하다 안 되어 나무꾼 호출~
애묵었다!!!
한번 절구질 할 때마다 묻어나는 점액질끈이 마치 비오듯...
그래도 의지의 사나이!!!
끝내 다 찧다!!!
작년 청국장은 너무 순했는데
원래 청국장 맛과 향이 코리코리 꾸리꾸리 콤콤해야 한대매...
근데 전혀 우리건 안 그렇더라구...
그냥 부드럽고 구수하고 끝!
헌데 올해 청국장엠 조금 콤콤한 맛과 향이 느껴져...
그냘 저녁
청국장 찌개 한 뚝배기 끓여서
한 사람이 세그릇씩 퍼먹었네!!!
우와~ 대박!!!
이래서 청국장 청국장 다들 그러는구나 싶었네~
만리타국에 사는 혈육에게 톡으로 사진을 보여주며 원하면 보낼까 타전했더니 “당근이지!” 라는 답이 돌아왔다.
마을 희득이할매한테 콩 좀 더 있느냐고 물어놨다.
딸래미 준다고 남겨놓은 여덟되 있다는데
딸이 안 가져간다면 주시겠노라고...
그거 받아다 청국장 또 띄워야겠네~
그리고 메주도 더 만들어 달아야 하고...
올해 장맛이 기대된다!!!
생전 울 할매 장맛은 참 달았는데...
아무것도 안 넣고 장만 넣어도 간이 맛고 맛이 좋았는데...
그 맛이 재현이 될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