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할매의 하루~

산골통신 2010. 4. 8. 13:08

이른 새벽 해뜰 무렵.. 

하지만 아직 뿌옇게 밝아오지도 않은... 그런 캄캄함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신다.

할배 병구완 때문에 밤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는 환경 탓에...  하루에 짬짬이 주무시기는 하지만

피로가 그리 쉽게 풀릴까... 

그래도 강단과 끈기 밀어부치는 강렬한 의지로 닥치는 세상을 떠밀어내신다.

 

할배의 뒷수발을 마치고 문을 열고 나오시면 노란 고양이 한 마리... 아웅~  발목에 휘감고 돌아간다.

언제 어디서든 할매 기척만 나면 쏜살같이 뛰오는 업둥이 고양이다.

뉘집 새끼인지 모르고 에미애비가 누군지 당췌 모르는 듣보잡 고양이다.

어느날인가부터 느닷없이 나타나 슬쩍 강냉이 식구한테 엉겨붙어 살더니만... 도리어 강냉이식구들 모조리 들로 산으로 이사간 뒤~

지맘대로 눌러붙어 사는 희한한 넘이다. 말하자면 굴러온 고양이 박힌 고양이 빼던져버렸다~

그 바람에...

할매... 평생에 단 한번도 살 생각도 안 하셨고...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던 고양이사료를 사시기 시작하셨다.

 

현미쌀 찹쌀 아침밥 앉혀놓고...  빨랫줄에 빨래를 대충 주물러 널은 다음...

닭집으로 올라가신다. 언덕 위에 있어서 비탈 오르막을 올라가야 한다.

옆에 손잡이 철골을 기대놓았지만 그래도 허리 꼬부라진 할매한테는 여전히 힘겹다.

꼬부라진 허리를 어찌 펴보려고 애를 쓰시면서...

 

닭들은 할매 올라오시는 기척을 용케 안다.

희한하게도 이 집에 붙어 사는 짐승식구들은 서로의 기척을 기맥히게 알고 있다.

어떨땐 인간보다 훨 낫다는 생각이다.

 

훼에 올라가있다가도 할매 발소리만 나면 죄다 내려와서 꼬꼬... 소리를 내며 반긴다.

닭들 모이를 이것저것 섞어 개주고 어젯밤 먹다 밟아무져놓은 것들을 대충 치워준 다음...

그 앞 텃밭을 호미를 들어 돌보신다.

쪽파들이 실하게 자라고 있고... 겨우내 간간이 눈비 뿌렸고 봄비도 잦은 통에 마름병이 안 들어 통통하니 잘 자랐다.

냉이가 딱 들어붙어 호미로 좀 캐고.  독새풀 뽑아내고 쪽파들 숨좀 트이게 긁어주고 일어서신다.

 

농사일이란거이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이고~ 하루하루 둘러보며 눈에 띄는대로 하는 것이라...

아기돌보듯  눈가는대로 맘가는대로 호미질도 하고 삽질도 하고 낫질도 하게 되는거여...

오늘은 이거 몇시간 하고 내일은 이거 몇시간 하고~ 그케 계획대론 절대 안 되더란 말씨...

 

소가 있었으면 소여물주랴 물주랴 좀 분주하셨을텐데~

할매 일거리 많아 힘든다고 지난해에 홀랑 팔아버렸다. 

소일거리 없다고 심심타고 노상 푸념하시지마는... 연세를 생각하셔야지.

 

그래도 고추밭은 기어코 당신이 하신다고... 비닐하우스 철거를 못 하게 하신다.

해서 크고작은 밭 다섯 군데랑 고추밭 세 군데... 농사 지신다.

거기다 별거별거 다 하신다. 넘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 싫다고 당신 드실 것 자식들 싸줄거 등등...

일년농사 규모가 제법 된다.

들깨 참깨 무 배추 상추 고추 검정콩 흰콩 메밀 녹두 질금콩 강낭콩 팥 옥수수 감자 땅콩

파 양파 마늘 토란 오이 가지 토마토 호박 등등.. 

사람 입에 들어가는 건 거진 다 하신다고 보면 된다.

논농사는 힘에 부치신다고 힘든거는 사람일손 기계손 불러 하신다. 그건 그렇게 해야혀~

노인네 힘으론 논 삽질은 힘들다고라... 내도 죽갔구마는...

갈봄으로 도랑 도구치는 거이 보기엔 쉽지~ 에궁...

 

텃밭으로 가서 상추 좀 돌봐주고~ 가물타서 비실대면 물도 주고... 새벽에 반짝 추워서 냉해를 입으면 살짝 비닐로 덮어주기도 하고~

정짓간이랑 가축우리에서 나온  찌꺼기들 거름되라고 호박구덩이에 묻어놓고...

호박은 어찌나 거름 탓하는지... 거름 많다 소리를 절대 안 하는 넘이란다.

거름 한 섬에 호박 한 섬이라던가? 옛말에...

 

할매.. 호미들고 쪽파밭에 옥수수 씨 집어넣고~  쪽파가 일주일 지나면 쇠어버리니까 얼렁 뽑아먹으라고 선녀 닥달 한 번 하고~ ㅎㅎ

쪽파 한아름 뽑아다 그거 다듬느라 손구락이 시꺼매졌다. 쪽파적 해묵고 파절이 해묵고~  데쳐서 무쳐먹고~

여기저기 음식에 넣고... 푸짐하게 해묵었다.

뭐든 앉아하는 건 젬병인 선녀... 궁시렁거리며 쪽파 다듬는데 학교 갔다온 꼬맹이 퍼질러 앉아 같이 다듬어준다. 

뭔가 에미한테 할 얘기가 긴히 있나보다.

 

쪽파는 갈에 씨를 묻어놓고 한번 뽑아먹은 다음~ 겨울을 나고 다시 싹이 올라오는 씩씩한 넘이다.

희한하게도 가을에는 그다지 맛이 없고  꼭 봄에 다시 올라오는 넘들한테만 특유의 향과 맛이 난다.

겨울추위를 이기고 올라오는 넘들은 꼭 그렇더라구. 삼동추하고 냉이도 그래.

 

고추밭 감자밭 거름을 다 내고 흩어뿌리고 골을 기린다음  물을 푹 주고 비닐을 씌워놓았다. 

감자는 칼로 일일이 잘라 아궁이 재를 묻혀놓았다가 골 구멍파고 묻으면 되고~

고추밭엔 고추모종만 꽂아놓으면 된다. 모종은 이웃에 부탁해놓았다.

고추씨를 뿌려 키우면 되긴 하는데..  온 봄내  그거 아침저녁으로 애기돌보듯 돌봐야하는데...

얼매나 구찮고 성가신데...  많이 하면 몰라도~ 조금 하는 건 그케 못 한다고라...

또 고추잘록병인가 머시깽인가 걸렸다하면 똑똑 불개져 기맥혀버리고...

쥐들 등쌀에도 못 살고~

아차 실수로 하룻저녁 늦게 덮었다던가~ 안 덮었다던가 하면 몽땅 도루묵되지...

다 얼어죽는다고라...

그래갖고 만여 포기 홀라당 죽인 이웃도 있어여...

또 먼 병인지 들어서 두번 세번  파종해서 키운 이웃도 있고..

이거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해서 잘 키우는 이웃 하나 봐놓고 거따 부탁해서 구해심는 수가 젤로 편혀!

큰 포트에다 씨를 파종해서 키운 다음 그거 일일이 하나씩 뽑아 작은 포트에다 옮겨심는 작업도 해야하걸랑?

에고 허리야...  낸 모한다. 자칫 손구락에 잘못 힘을 줬다하면 똑 불개지고  뿔개지고~  에잉... ㅠㅠ

해서 할매랑 선녀는 그 뒤부터 고추모종 안 키운다.

 

고추밭 대충 돌봐주고~  찢어진 비닐하우스 기워주고~  이넘의 비닐하우스가 일년에 한번씩은 수선을 해줘야하는데

비닐 갈아주는거이 그게 얼매나 힘든데...

비닐이 햇볕과 바람에 삭아서 다 부스러지고 찢어져 2년을 못 간다.

해서 해마다 수선을 해서 쓰던가~ 2년마다 새로 비닐을 걷어내고 새로 씌워줘야 한다.

그러자면 줄 다 풀러내야지.  비닐 찝어놓은 검정찝게 다 벗겨내야지~ 

양 옆에 고정시켜놓은 꼬불꼬불 긴 철사도 일일이 걷어내야하고~  이 철사 잘못 다루면 얼굴 친다고~ 눈알도 조심해야하고~

또 돌아가며 비닐끝을 흙으로 묻어 지탱해놓은 것도 다 파제껴 걷어내야하고~

이거이 끝이냐? 오우 노!  다시 비닐 씌워서 찝게 찝어주고 흙 삽질해서 팽팽하게 묻고 꼬불꼬불철사 다시 조심조심 꼬불꼬불 끼워넣고

줄을 비닐하우스 이편 저편으로 팽팽하게 당겨서 비닐 안 날라가게 잡아매고~

하루 온종일 해야한다고라...  뭐~ 장정일꾼 많으면사~  일거리도 아이겄죠.

 

작년에 수선을 쪼매 해놓았는데 하도 비가 많이 와  물주머니가 생기도록 축 쳐져서~  도로 뜯어져버렸다.

죄다 가위로 잘라내고 그 부분만 새로 비닐을 씌워줬다.

할매는 허리가 꼬부라져 일 모하신다.  천상 선녀가 들통 뒤집어 엎어놓고 올라서서 해야한다.

다행히 올해는 비닐하우스 하나만 수선을 해도 됐다.  하늘이 도왔다~ ㅎㅎ

내년엔 묵은 비닐을 죄다 뜯어내고 싹~ 새로 해야지.

 

산골에선 시계 필요없다. 시계 볼 일이 없다.

아이들이 있어 제때 학교 보내려  애들 닥달하느라 조금 필요할까~

아침 해 올라가기 전에 문 열고 나와서~ 점심 배 힐쭉 해질때 집에 들어가면 딱 맞다.

열두 시에서 한 시 사이다. 배꼽시계가 젤루 정확하다.

점심 끼니는 간단하게 때운다.  묵이 있으면 묵밥해먹고 콩나물 있으면 콩나물비빔밥 해묵고

떡이나 고구마 감자 있으면 그거 먹고  물 한잔 마시고 말고...

쪽파적이나 미나리 적이나 꾸서 먹기도 하고...

어쨌든 삼시세끼 밥은 못 먹는다.  심심해서 절대 안 되신다네~

뭐라도 한 끼는 군것질?을 드셔야지.

 

잠시 집안일 돌보고 할배 뒷수발 하시고 쉬신 다음...

다시 일하러 가신다. 뭐 딱히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몸 놀려 일하는 것이 더 좋아서다.

이렇게 나가면 해가 서산으로 꼴딱 넘어가서야 들어오신다.

요즘은 해가 길어져서 해가 져도 밝아서 늦게까지 일을 할 수가 있고

희한하게도 산골에서 살면 눈이 밝아지는 건지 익숙해져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밤에도 사물이 그럭저럭 보인다... 

해서 불 안 켜고 돌아다녀도 암탈없더라고.

 

선녀가 돌보는 밭은 풀 구덩이고~ 할매가 돌보는 밭은 말끔하다.

선녀는 할 때 막 몰아서 하고~ 안 할 때는 뒤도 안 돌아보는 게글뱅이고...

할매는 수시로 오며가며 호미를 손에서 놓지 않고 밭을 자식 돌보듯 가꾸신다.

그러이 당해낼 재간이 없다.

 

텃밭 농사일은 일도 아이고 절대 힘 안 든다고 하시는데

그 말이 절대 빈 말이 아님을 안다.

손에 일이 딱 붙어서 무슨 일이든 참 쉽게 하신다.  일테면 일머리를 아신달까.

일머리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은 일 하는 거 보면  딱 안단다.  천지차이란다.

농사일 해보이 그걸 알겠더라고.

일머리 아는 사람은 가볍게 휙~~ 한 바퀴 돌면 밭이 깨끔해지는데..

일머리 모르는 사람은 하루죙일 밭에서 못 헤어나더라...

노상 밭꼬락서니가 그 꼴이고... 

 

해지면 닭들이 훼에 올라가려고 부산을 떤다.  갸들은 꼭 그런다.  지들끼리도 지위고하가 있는지

힘 약한 애들은 훼에 못 올라간다. 구석탱이에 쳐박혀 자야한다.

닭들 자기 전에 모이를 줘야 하는데... 닭들은 눈이 어둡고 얼띠기여서 해만 지면 기신을 못한다.

해서 해지기 전에 모이를 줘야 한대여.

그려서 닭 잡을때  밤에 가야  쉽게 잡을 수 있다는겨... 

밤에 자루 울러매고 할매랑 선녀량 닭 잡으로 숱하게 밤길 걸었었지비~ ㅋㅋㅋ

 

소가 없으이 남아돌아가는 나물들 찌꺼기들 줄 데가 없다~ 닭이라도 있으니 괜찮다만~

하시며 또한번 뭐라 하시지만...  소를 다시 살 생각은 아직 없다.

소가 있으면 할매 건강 해칠 정도로 일 과하게 하신다.  안 된다.

그래도 닭이 다 먹어주니 버릴 것이 없다.

 

알 낳아놓은 것들 꺼내고 모이 주고 닭집 문 단속 하고 나면 하루해가 끝난다.

들고양이때문에 문을 확실히 잠가야 한다. 

 

하루가 번쩍번쩍 간다고 세월이 금방금방 간다고 한숨을 쉬신다.

나오면 금방 점심때고 나오면 금방 해지고...

들에 나오면 시간이 그리 잘 간다고... 

사실 그렇다.  겨우내 집구석에 쳐박혀  시간때울라고 보면 얼매나 지겹던동...

날씨 푹해지면서부터 온몸이 근질거려 죽갔더라고.  일 하고 싶어서...

 

할매 발목 휘감으며 아웅 거리는 얄미운 고양이 한 번 쥐어박고 먹이 주고 들어가신다.

일하고 나면 시장기가 심하게 돈다.

일을 안 하면 배가 안 고푸다.  배꼽시계가 얼매나 정확한지 들에 나가서 일해보면 딱 안다.

서둘러 저녁밥 앉히고  나물반찬 간끼있는 반찬 준비해서 밥상차린다.

두런두런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하고~  의논꺼리 모아보고...

내일 무슨 일 해야지~  계획도 조금 세워보고...

아홉시 뉴스 일기예보는 먼일이 있어도 봐야하고~ 요샌 좀 정확하더라고.

요샌 먼넘의 날씨가 조석변동이라...  불시에 들이닥치는 눈비 바람이 잦아져서 일기예보 안 보면 낭패가 좀 있기도 하다.

 

일찍 자기 뭐하면 마당에 나와 하늘 별 구경한다.

날이 맑으면 별이 총총... 북두칠성 은하구 뚜렷이 보인다.   달 밝은 밤이면 가로등이 무색해질만치 밝고

달 밝은 밤이면 별이 빛을 잃는다.

내일 날이 흐릴라치면 달무리가 멋있게 진다.  휘황한 둥근달  주위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는 달무리...

그냥 입 닥치고 바라만 봐야한다.

 

밤이 되면 산식구들~ 야행성 동물식구들이 움직인다.

갸들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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