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통신

[산골통신] 마음이 눅눅할때는...

산골통신 2008. 11. 25. 18:14

그저 동굴로 들어가야한다. 한동안...

어두컴컴하고 아늑한...

 

어제오늘 안개가 자욱하니 끼었다.

오늘 새벽... 장관이더라. 멋있어.

 

새벽... 두시던가.

툇마루에 오두마니 나와 앉아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얼만큼 오래 앉아 있었을까...

절절끓는 구들장에서 노골노골 뎁혀놓았던  몸이 차게 식어...

맘까지 고요히 차게 식어...

한참만에야 다시 구들장 엑스레이 찍으러 갔지.

 

어제 아침.. 식전. 비가 한방울 막 뜯기 시작할 무렵...

비 맞으면 안 된다고 논 짚가리를 다 들여놓아야 한다고 할매 성화...

아이고~ 할매요.. 느지막히 짚이 잠을 자걸랑 한다매요...

우리 어제 지리산 갔다와서 녹초가 되었구마는~~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더 녹초가 되는 지리산행...

요즘은 어케 된거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머 하여튼 나무꾼이고 선녀고 파김치가 되어있는 꼴을 보시고는~

품일꾼을 구하러 마을로 가시네...

홍우아빠랑 선태아빠랑 운좋게 말이 되어 경운기 각각 끌고 논으로 갔단다.

우리도 어여 나오란다. 짚이라도 던져줘야 한단다.

나무꾼은 트럭끌고 논으로 갔고 선녀는 소마구로 가서 할매랑 짚가리를 쌓기 시작...

경운기 한 바리 들어오기 전에 먼저 온 바리바리 짚단을 다 동개야 하걸랑.

손에 발동기 단 것보다 더 빠르게 일 해치우기 시작.

어째 내는 노는 복이 엄써. 일복만 넘쳐나고.

 

비는 올라카고~ 날은 잔뜩 찌푸려서 울상이고.

홍우아빠랑 선태아빠도 놉을 더 구해서 어여 끝내버리자고 막 야단이었지만

이깟 짚단 들이는데 놉을 더 구한다는 거이 말이 되냐...

 할매 일갈~    눈물 머금고  걍 일을 해야했다나~~

 

에고~ 우리 밥좀 먹고 하자구요~ 우리 아침도 아직 안 묵었소.

오늘 새벽에 도착했구마는... ㅠㅠ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에공...

 

어쨌거나 하늘은 우리 뱃속 사정 안 봐줬고 묵묵히 일을 해야했다나.

 

비가 뿌리기 시작~~ 일꾼들은 속도를 내서 일을 했고

다들 손에 발동기를 달아서 정신없이 몰아쳐가며 일을 했다.

열마지기 짚단이 세 시간만에 다 소마구로 들어왔다.

꽉꽉 들어찼다.

후아... 이거갖고 내년 일년 소 먹이면 되겠다.

소를 더 늘리진 말아야겠군. 짚 모자라서.

송아지 태어나면 어미소는 팔아야지.

소 한 마리가 예닐곱 마지기 짚단을 먹는단다. 일년에.

 

짚가리를 다 쌓아놓고 욱신거리는 손구락을 주물러가며 내려왔다.

방에 불도 못 땠다.

아궁이에 부랴부랴 통나무 째로 막 집어쳐넣어 땠다.

장판이 눌어붙던 말던 이불이 떡떡~ 들어붙어 이불을 들칠때마다  찍찍 소리가 나던 말던.

에고 등짝좀 지지고 보자. 사정없이 쳐넣었다.

 

나무꾼과 선녀는 그대로 뻗었다.

이 농사 저 농사 다 해봐도 자식농사가 젤로 어렵고 힘들다.

 

고양이들은 여전히 지붕밑을 들락거리고

우리는 웃채를 버리고 아랫채로 피신갔다.

나무꾼이 지붕위로 올라가서 새로운 구멍들을 발견해 막았는데도 여전히 들락거리는 걸 봐서는

고양이들만의 비밀통로가 숱하게 있는가보다. 못말리... ㅠㅠ

내 언제고 저노무 지붕을 확~ 뜯어버릴란다.

 

아침... 쥐 세 마리를 마당에 늘어놓은 고양이들을 발로 걷어차줬다.

혹자는 이걸 쥔장한테 바치는 선물이라고 하더나?

자랑하려고 한거라나? 에라~~ 치아라.

매일 아침 눈만 뜨면  머리없는 쥐새끼 시체들이 늘어져 있는 꼴을 봐야 하는 신세 좀 되어 보소.

표정 관리 제대로 되겄나!!!

 

먼 넘의 집구석에 뱀 허물이 구석구석 있질 않나~

지네가 심심하면 출몰하질 않나~

쥐사냥하는 고양이들 덕분에 쥐 시신은 매일 봐줘야 하질 않나~

발정난 고양이들 천정 위에서 데이트 하는 통에 새벽잠 다 달아나질 않나... ㅠㅠ

 

아하...

오늘은 아침부터 일 마이 했다.

밭에 메밀 다 거둬 타작해서 자루에 담아왔고~

양파 마저 심고 비닐 씌웠고 마늘비닐도 골따서 다 씌웠고

소마구 한바탕 쳐냈고~

또 뭐했더라...

아. 텃밭 오이랑 토마토 서리맞아 다 쭈그러들은 거 다 걷어내고

밭을 일궈... 아궁이 재 쳐내서 뿌려주고

상추 심고  비닐 씌워 줬다.

 

그러고 나서 방아를 찧잔다.

할매요...

어제오늘 일 넘 마이 햇소

오늘은 이만 합시다.

우리 아직 햅쌀맛도 못 봤지만

하루만 더 참고 내일 합시다아~~

 

흐느적 흐느적...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나만의 동굴로 직행.

좀 쉬어야해.

 

그래야 재충전이 되지.

마음이 힘들때는 곡차가 최고인데...

먼넘의 요새 술은 알콜 도수가 낮아.. 19.5도는 걍 물일쎄...

아무리 술맛을 느껴보려고 해도 걍 물이야...

소주병을 냅다 집어던졌다.  탄산음료같은 맥주는 물 버리러 가기 구찮고.

25도 넘는 쌈박한 걸 찾아봐야지. 안 되겠어.